'영지주의'에 해당되는 글 5건
- 2013.10.24 구약성경의 외경 혹은 제2정경과 위경에 관하여
- 2013.06.11 소위 예수에게 부인이 있었다는 얘기에 관해
- 2012.10.29 말씀의 사유화, 역기능적 신앙 4
- 2011.01.25 신앙의 항체
- 2010.12.27 "나는 공교회를 믿습니다."
구약성경의 외경 혹은 제2정경과 위경에 관하여
천주교나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구약성경은 개신교처럼 39권이 아니다. 천주교의 경우 7권의 책이 더 있으며, 정교회는 지역교회마다 조금씩 다른 책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들을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외경이라 부르고, 천주교에서는 제2정경이라 부른다.
외경, 혹은 제2정경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위경이라는 책들은 무엇인가?
1. 왜 개신교와 천주교/정교회의 구약성경은 차이가 나는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개신교의 39권 구약성경은 히브리성경의 전통이며, 천주교와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46권 내외의 구약성경은 그리스어구약성경의 전통이다.
이 두 가지 정경의 전통을 알렉산드리아 정경과 팔레스타인정경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2. 알렉산드리아 정경과 팔레스타인 정경?
그리스어구약성경에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유대인들(재외유대인들)이 즐겨 읽던 책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본토유대인들에게 이 책들은 신적 권위가 없었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20세기의 성경개론학은 알렉산드리아 전통(=칠십인경)과 유대 전통(=히브리성경) 두 가지가 양립 내지 대립해 있다고 여겼다.
2.1 "얌니아회의"
19세기 유대학자 하인리히 그랫츠의 주장 이후 20세기 중반 정도까지 "얌니아회의"의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유대 팔레스타인 전통을 반영하는 히브리성경은 주후 90년경 얌니아회의에서 제정되었고, 알렉산드리아 전통을 반영하는 칠십인경은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을 계승한 이방초대교회의 전통을 반영한다고 여겨지곤 했다.
2.2 얌니아회의에 관련한 가톨릭근본주의 호교론의 주장들
가톨릭근본주의 호교론은 얌니아회의 가설로부터 다음과 같이 개신교를 공격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만들어냈다.
(1) 얌니아회의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저주문이 선언되었다. 개신교는 그 얌니아회의의 성경을 받아들인 것이다.
(2)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칠십인경을 읽었다. 개신교는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읽었던 성경을 부정했다.
(3) 신약성경에는 외경이 300여 군데 인용되어 있다. 개신교는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읽었던 성경을 부정했다.
기타등등.
이런 주장이 과연 사실관계에 부합하는가?
3. 알렉산드리아 정경과 팔레스타인 정경의 구분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성경학계의 연구는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팔레스타인 전통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방향에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구체적인 근거로서 (1) 당시 재외유대인이 남긴 문헌적 증거 (2) 소위 얌니아회의의 허구성 (3) 헬라어번역성경인 70인경을 통한 증거 등을 들 수 있다.
3.1 재외유대인들의 사례들
소위 디아스포라 유대지식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요세푸스나 필로의 기록에서도 히브리성경과 나머지 문서들은 인용 빈도수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나며, 권위있게 받아들여지는 정도 역시 달랐다. 오히려 요세푸스나 필로는 오늘날의 히브리성경 24권 (=개신교 구약성경 39권)과 비슷한 22권을 정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날 히브리성경은 24권으로 계수되나, 계수방법에 따라 22권이 될 수 있다. 22권이 24권으로 계수된 것은 아마도 완전수 12+12라는 히브리적 숫자관념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재외유대인들은 평생 적어도 한 번은 본토 예루살렘을 순례하면서 유대교의 표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3.2 얌니아회의?
그렇다면 얌니아회의는 어떻게 된 것인가?
한 마디로, 얌니아회의란 주후 90년이라고 때를 특정하기조차 곤란하게 느슨하게 지속된 랍비들의 회합이었다. 이 모임은 산 헤드린 공회와는 달리 학파간의 학문적 토론의 장이었으며, 어떤 구속력 있는 법적 결정이 내려지는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공의회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유대지식인인 요세푸스가 그 시대 가장 앞선 소식통이었음에도 얌니아에서 공의회적 성격의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다.
소위 얌니아회의는 오스트리아의 유대역사가였던 하인리히 그랫츠가 발표한 이래로 20세기 중반 정도까지 유행했지만 1960년대 이후 개연성이 없는 것으로서 이미 기각된지 반 세기가 넘는 낡은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랫츠가 '얌니아회의'를 말했던 것은 그리스도교의 공의회 개념에 의한 유비적으로 유추한 결과이다. 이를 20세기 서구성경학계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었다.
A. 개신교는 얌니아회의를 계승했다?
그렇다면 얌니아회의에 기초한 가톨릭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떻게 되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주장은 개신교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20세기의 발명품일 뿐이다.
B. 얌니아회의의 저주선언?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저주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랍비들의 기도문에 지나지 않는다. 가톨릭근본주의자들은 이것을 얌니아회의에 갖다 붙인 가공의 얌니아'공회의' 저주선언(anathema) 버전으로 둔갑시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의 저주기도(birkat ha-minim) 제정을 포함한 얌니아공의회 이론이 일종의 신화라는 현재 논의상황에 관해, 나의 글 "소위 얌니아공의회의 신화"를 참조하라.)
3.3 개신교는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읽었던 칠십인경을 버렸다?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칠십인경을 읽었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A.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열두 사도의 모국어는 아람어였으며, 그리스어의 이해 정도는 제한적이었을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인인 아우구스티누스가 당시 공용어인 라틴어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고백했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열두 사도들의 그리스어 구사 능력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울을 위시한 1세기 후반 디아스포라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외경이 디아스포라 유대인 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성경으로 통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3.1항과 아래 3.3.B항을 참조하라.)
B. 칠십인경에 포함된 나머지 책들이 예루살렘과 유대 본토에서 성경으로 읽혔어야 한다.
그러나:
- 외경이 예루살렘과 유대본토에서 성경의 권위를 지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 예수님과 초대교회 당시 칠십인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져 있는 칠십인경과 동일한 범위를 가졌다는 증거는 더더욱 없다. 칠십인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은 모세오경만을 갖고 있으며, 외경을 포함한 후대의 고대사본들에 수록된 외경 목록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져 있는 칠십인경은 서로 다른 외경을 갖고 있는 후대사본들로부터 그보다 더 후대의 교회가 재배열하고 종합한 재창조물이다.
그렇다면 쿰란문헌은 어떤가? 어쨌든 외경이 발견되지 않았는가? 이 역시 조금도 가톨릭근본주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 외경이 발견되었으나 극히 일부만이 발견되었다.
- 인용빈도수 역시 극히 빈약하다.
C. 신약성경의 구약외경 인용 문제
신약성경에서 구약외경은 어느 정도 인용되는가? 300여회 인용되었다는 게 사실인가?
300여회 인용되었다는 숫자는 신약성경 원전 뒷면에 성경 인용 및 암시 목록(Loci citati vel allegati)의 숫자가 그 정도 되는데, 이걸 두고 하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러나 목록을 조금만 검토해 보아도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성경인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단순히 인용되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성경이라는 뜻도 아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외경만이 아니라 위경과 심지어 그리스 시인의 글이나 속담까지 인용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 외경이 인용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외경이 구약성경과 더불어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었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약성경의 구약외경 인용 문제에서 유념해야 할 사실은 신약성경에서 성경으로 인용할 경우에는 이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인용한다는 점이다. 히브리성경의 경우 약 2/3 정도가 성경으로 인용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책들은 당시 이미 성경으로 통했다는 것이 입증된다. 나머지 1/3 정도는 (최소한 일부는) 성경으로서 권위를 얻어가는 중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물며 구약외경은 그런 식으로 인용된 바가 없다. (오히려 구약위경인 에녹1서가 신약성경 시대에 성경으로 여겨졌다면 모를까!)
요컨대, 신약성경의 구약외경 인용 문제는 초대교회 당시 구약외경이 외경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다.
4. 예수님과 초대교회 당시 구약성경이 존재했는가?
예수님과 초대교회 당시 구약성경과 외경 사이에 구분이 없었는가? 구약성경 22/24권 또는 39권은 당대에 아직 완결되지 않았는가?
확실히 오늘날과 같이 뚜렷하게 구획짓는 성격의 구분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정경과 외경/위경 사이의 구분은 오늘날보다 느슨하고 유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경과 비정경문헌 사이의 구분에 대한 인식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미 앞의 기술을 통해 22권이 영감된 하나님 말씀으로 생각되고 있었다는 점과 구약성경의 적어도 2/3 정도는 성경으로 인용된 반면, 외경은 성경으로 인용된 사례가 없으며, 성경으로 읽혔던 증거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3.3항 참조.)
당시의 상황은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A. 완결되었다는 입장:
필로가 히브리성경 22권의 존재를 증언했기 때문에 주전250년 경에서 주전 1세기 경 무렵에는 오늘날과 거의 같은 범위의 히브리성경이 정경적 개념으로 읽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구약외경인 예수 벤 시락의 집회서 서문에 기록된 대로 당시 히브리성경은 두 가지(율법과 선지자), 또는 세 가지(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등)로 구분되었을 것인데, 오늘날 성문서라 불리는 문서들 가운데는 아직까지 정경적 권위가 의심되거나 논란되었던 문서들이 있었을 것이다.(에스더서, 전도서 등.) 그러나 이 역시 이미 정경으로 통용되었다는 정황을 전제로 한 것일 수밖에 없다.
B. 완결되지 않았다는 입장:
쿰란공동체의 성서들은 아직까지 정경의 범위가 유동적이었으리라는 추론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또한 유대교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성경의 범위를 정하여 구속력 있게 공표한 적이 없고, 서기관들의 사본길드를 통해 천천히 정경의 범위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본적 증거를 토대로 판단한다면 기원후, 심지어 중세까지도 내려 잡을 수 있다.
A안과 B안의 약점과 강점은 사본적 증거로 귀결된다.
A안의 약점은 22권 정경을 뒷받침해 줄 단일한 (양피지)사본이 없다는 점이다.
B안의 약점은 사본의 증거에만 의존해 있다는 점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태로 개별 책자를 보관해 왔던 유대교 전통에서 정경의 범위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했다는 점이 간과될 수밖에 없다. B안의 약점은 A안의 강점을 설명해 준다.
아마도 A안 쪽이 당시 대세였을 것이고, B안 쪽의 경향도 존재했을 것이다.
본토유대그리스도인들 중심의 초대교회에서 디아스포라 유대그리스도인들을 주축으로 한 초대교회를 거쳐 이방인 개종자 중심의 초기교회로 넘어간 이후 교회가 - 비록 일치된 목록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 서서히 외경들을 구약성경에 포함시키는 추세를 보여주었던 것은 예루살렘모교회의 붕괴 이후 디아스포라 유대그리스도인들의 기억에 의존하게 된 초대/초기교회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토유대인들과 교류를 지속했던 교부 오리게네스와 히에로니무스는 A안의 우위성을 설파했다. 종교개혁 전야에 이르기까지 A안의 우위성에 대한 인식은 서방교회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외경을 성경에서 배제한 것은 그들의 개인적 발명이나 변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전통의 맥락에서 나온 조처였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소위 종교개혁 '진영'만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개혁 전야에 생존했던 프란치스코 지메네스 데 시스데로스 추기경이 편찬한 다국어성경(Complutensian Polyglot) 역시 외경에 대해 똑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5. 오늘날 구약외경 혹은 제2정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5.1 외경 혹은 제2정경의 용어문제
20세기 성경개론학에서 말했던 소위 알렉산드리아 정경의 개념은 정확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중요한 한 가지 사실, 즉 고대 그리스도교회가 구약성경 전통을 나름의 확장된 시각을 통해 재규정하려고 노력했다는 의의는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구약외경 내지 제2정경은 유대교의 현상이라기 보다는 고대그리스도교의 작업이었다. 그러나 구약외경을 성경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고대교회의 큰 흐름이 결국 만장일치의 결과에 이를 수 없었던 것은 "히브리적인 것의 우위성"(히에로니무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오늘날 외경의 책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교회 안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고, 부차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한 단계 낮은 권위와 중요성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제2정경으로 부를 수 있다. 이는 역사적, 현실적 실재에 부합할 뿐 아니라, 이 책들에서 교리적 전거나 성경적 중심을 두려 하지 않는 개신교나 정교회의 경우에는 이런 의미에서 받아들여지는 한 큰 문제 없이 통용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개신교 근본주의 노선에서 성경 66권의 의미를 너무 경직되고 편협하게 규정한 나머지 외경을 읽거나 제2정경을 받아들여 연구하는 것 자체를 - 비록 제2열에 속할 지언정 - 또 다른 '정경'을 제정하려는 불순한 행위로 받아들여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배신이라거나 "하나님 말씀에 무엇을 더하는" 배교적 행위로 간주하여 백안시할 경우이다. 그러나 외경 내지 제2정경은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연구하고 이해하면 될 중요한 성경배경문헌일 뿐, 백안시되어야 할 까닭이 없다.
로마가톨릭에서 제2정경이라 일컬을 때는 한 단계 낮은 권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중에 덧붙여 졌음을 의미한다. 로마가톨릭, 특히 중세버전에서는 제2정경의 특정 구절들이 매우 중요한 교리적 전거와 성경적 중심에 해당된다. 그러나 최근 로마가톨릭에서는 연옥표상에 대해 전면적인 재해석을 가하고 있다. 따라서 소위 제2정경의 특정 구절들이 예전처럼 중요할는지는 의문이다.
세계교회의 지평에서 볼 때, 제2정경이라는 용어는 개신교와 정교회, 로마가톨릭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비교적 중립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5.2 외경의 유익
외경을 알면 구약과 신약 사이에 일어난 정신적 분위기의 변화 이유를 보다 쉽게 짐작할 수 있으므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굳이 외경으로만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신교에서 외경이 교리에 반영할 수는 없으나 읽어서 유익이 된다고 가르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심지어 정교회에서도 동일하게 통용되는 외경에 대한 태도이다.
외경의 특정구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특정교리를 이끌어낸 것은 로마가톨릭교회 뿐이며, 실상 이는 정확하고 정당한 주석에 뒷받침되지 않는 채 전통적 선입견을 시대착오적으로 비슷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특정구절에 연결시킨 결과일 뿐이다.
이점에 유의한다면 구약외경연구는 성경이해에 매우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다.
6. 위경은 거짓된 문서인가?
한 마디로 말해 그렇지 않다. 위경은 거짓된 성경이라는 뜻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의 이름을 빌어서, 즉 저자가 가명으로 기록했다는 문헌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신구약중간기 문헌 가운데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중요한 문헌은 에녹 1서인데, 에녹의 이름을 빌어 기록되었다. 신약성경은 에녹 1서를 매우 중요한 배경으로 받아들여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위경문학 자체가 읽어서는 안 될 거짓된 것은 아니다.
위경문학의 방법은 오늘날의 저작권 관념에서 보면 용납될 수 없을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고대에는 플라톤이 말했다시피 진짜 거짓말 보다는 거짓으로라도 참을 말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신구약중간기 문헌을 고대의 그리스도 교회에서 개작한 경우들도 있으며, '위디오니시우스'의 경우에서 나타나듯이 중세까지도 진리를 드러내는 방법으로서 유명한 위인들의 이름을 빌어쓰는 것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일종의 문학적 장치로서 선호되었다. 다만 발각되면 배제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구약 외경과 위경의 차이점은 위경의 경우 구약위인들의 이름을 빌어서 집필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체적인 추세를 말할 뿐이지 예외가 없지 않다. 가령 구약 외경 가운데 다수는 일종의 위경문학으로 봐야 하지만 외경으로 분류되어 있다. 아마도 위경문학 가운데 특별히 인기있었던 몇몇 문서들이 경전적 지위에 버금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위경문학 가운데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부 문헌들이다. 이 문헌들에 나타나는 영지주의는 사도적 복음의 역사적 진리에 배치되는 메시지가 담겨 있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부 영지주의 문헌들이 곧 위경 전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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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참고문헌] Lee Martin McDonald, The Biblical Canon (1995); Lee Martin McDonald and James Sanders ed., The Canon Debate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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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빈치코드 이후 다빈치코드에 담긴 반기독교적 개념들이 사실로 둔갑하여 보도되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룟 유다 복음서에 대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터무니없는 과장광고가 그랬고,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나의 아내"라고 불렀다는 콥트어 단편이 발견되었다는 하버드신학대 캐런 킹 박사의 학술적 발표를 선정적으로 기사화하는 보도행태가 그랬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먹고 살려니 별 짓을 다한다, 이런 얘기를 받아적기하는 기자들도 신학적 기본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탓이지 하고 웃어넘겨 왔는데, 이런 간단한 유언비어에조차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마저 낚여서 헤매는 경우가 의외로 꽤 있는 것 같다. 교회의 선포와 교육의 장에서는 이런 내용이 다루어지기가 여의치 않은 수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간단하게라도 사실관계를 밝혀둘 책임을 느낀다.
우선, 소설 다빈치코드에서 진실을 새로 밝힌 것은 없다. 작가 댄 브라운은 거기에 나오는 사실관계가 "모두 사실"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것부터가 거짓말이다. 그가 한 일은 고대 영지주의 문헌에서 몇 가지 단편적인 기록을 그것도 부정확하게 끄집어내어 자신의 반기독교적 의도에 맞게 개작했을 따름이다.
고대 영지주의 문헌이라면 소위 역사적 사실 여부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웃어넘겨주어야 한다. 영지주의란 요새 말로 '의미', '뜻'이 중요하지 역사적 사실이야말로 열등하다고 간주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 복음서니, 무슨 콥트어 단편이니 하는 것들을 교회와 신학이 몰랐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목록과 내용이 다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한 새로운 발굴성과나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은 영지주의 연구라는 특정 신학분과의 성과에 벽돌 한두 장 얹어놓는 정도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실관계 측면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란? 고대인들이 예수에 관해 구라친 역사적 기록, 또는 화장실에 애들이 끄적거린 낙서 비슷한 성질의 것이 하나 더 얹어졌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성경, 그 안에 담긴 사복음서야말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대교회의 검증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기독교에 불신과 의혹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곧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기록이 전설의 고향 쯤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코메디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성경의 기록을 전설의 고향 쯤으로 가볍게 취급하고 싶어할 정도로 투철하게 "비판적인", "역사비판적인", "반기독교적 현대인"이 고대 영지주의 문헌에 나온 쉰 떡밥을 덥썩 물고 희희낙낙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무슨 얘길 해도 기독교 안티질을 그만두고 싶지 않으실 분들이야 쉰 떡밥으로 무엇을 하시든 더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쉰 떡밥 덥썩 물고 배탈나시는 해프닝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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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2015.07.19]
캐런 킹 박사가 발표했던 문제의 콥트어 단편이 위조된 것이었다는 쪽으로 결론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둘 내용:
- 가룟유다복음서와 마리아(막달레나)복음서 자체는 이미 그 존재와 내용의 윤곽이 알려져 있다. [예컨대, 각각 Schneelmelcher (ET1990):386f, 391f.] 따라서 이런 영지주의 계통 신약외경들의 사본이 발견되었다는 것 자체는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 그러면 캐런 킹 박사의 콥트어 단편에 왜들 이리 호들갑인가? 가룟유다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노이즈마케팅에 불과한 비루한 짓거리다. 모르긴 몰라도 캐런 킹 박사도 좀 어리둥절하지 않았을까? 이미 그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던 신약외경 일부의 사본이 발견되었다는 정도 얘기를 갖고 신약정경의 예수상이 무너졌다고 나팔 부는 자들은 도대체 뭔가? 양심불량이 아니라면 자신의 무식과 태만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 그나마 문제의 콥트어 단편조차 조작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고대의 종교적 낙서 유물이 발견된 줄 알았더니 현대의 고대낙서유물 흉내질이었던 얘기. 저명한 초기그리스도교연구가 캐런 킹 박사 개인이 조작질에 연루되지 않았으리라는 건 다행이고. 반기독교적 떡밥이 뭐가 더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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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사유화, 역기능적 신앙
한국교회가 요즘 사이비이단들의 창궐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이비이단들은 한국교회가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춰 하나님 말씀에 더욱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탄의 가시다. 사탄의 가시를 두려워하거나 저주할 게 아니라, 이 문제 너머 계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들으면 될 일이다.
왜 사이비이단들이 창궐하는가? 결국 말씀의 사유화, 교회의 사유화에서 비롯된다. 하나님 말씀은 사도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유대 안에 있는 전 세계의 공교회에 선사된 것으로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사유화될 수 없다. 그것이 교황과 같은 역사와 전통과 힘의 아이콘이든, 유력한 특정 교회전통이든, 또는 잘 나가고 승승장구하는 특정 계층이든 말이다. 하물며 일개 교주, 일개 목사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문제는 말씀이 사유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목사들이 성경구절을 자기 편한대로, 자기 이익관계에 맞도록, 자기 원한관계를 풀기 위해서 갖다 붙여가며 해석질을 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질은 성경본문에 대한 엄밀하고 정확한 주석적 이해와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복음의 정신, 계시의 정신에 충실한 자유로운 인용도 아니다. 자기 이해관계와 자기가 파악한 좁다란 율법주의적이고도 영지주의적인 하나님상과 자기중심적인 은원관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려는 하잘 것 없는 소망에 대한 일개 종교권력자의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쉴새없이 성경을 인용해대는데 성경의 정신은 쏙 빠져 있다. 쉴새없이 성경을 증빙전으로 들이대는데 그 말씀이 어떤 문맥에서 어떤 정신으로 나온 말씀인지에 대해서는 알리가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성경 안의 새로운 세계"(칼 바르트)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는 하나님 말씀을 일개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로 제한하려드는 우상숭배행위 아니겠는가!
그 결과 그들의 성경인용이나 성경해석은 더 이상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하시고 안식과 평화를 주시는 복음의 선언이 아니라, 사람을 옥죄고 윽박지르고 협박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협잡과 다를 바가 없다. 인용되는 성경구절들은 더 이상 성경구절이기를 그친다. 자기가 진짜로 섬기는 대상에 대한 우상숭배행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이며, 사람의 마음을 얽어매어 자기가 원하는대로 조종하고자 세뇌하는 정서적, 영적, 심리적 지배테크닉(manipulation technique: Margaret Singer)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장 숭앙하는 듯 용의주도하게 가장 하나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진정한 속내로는 마술주문이나 다름없이 천하게 취급한다.
그들의 말은 겉으로는 거룩하고 경건한 듯 사랑과 믿음과 소망과 자비와 용서를 말한다. 그러나 그 진짜 속내는 자기 아집과 편견이며, 자기 권력과 이익의 증진에 있다. 그들의 입술은 아름다운 말을 그럴듯하게 하나 늘 독을 품었다. 귀 있는 자는 그들의 말을 정말 잘 들어보라. 예수님은 결코 욕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독사의 자식들이다!
말씀의 사유화가 고약하고 지독한 까닭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 그것이 소위 보수개혁주의든, 복음주의든, 바르트주의든, 진보주의든 상관없이 - 정통교리의 테두리 안에 영악하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규신학교육을 받아서 어떻게 하면 정통교리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는지 안다. 차라리 사이비이단자들에 관해서는 그 허무맹랑하고 무식한 성경해석과 교리를 콕 집어서 교회공동체에 경고해 줄 수라도 있다. 그러나 말씀의 사유화는 너무나도 교묘하고 사사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그 실체가 드러나기 어렵다. 중세 말 종교개혁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처럼 이미 걷잡을 수 없게 곪고 썩은 뒤에나 모두의 시야에 드러나게 된다.
사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창궐해 있는 사이비이단자들은 이러한 교회의 그릇된 관행을 토양으로 자라나고 있을 따름이다. 교회가 이 부분에서 똑바로 깨어 있다면 사이비이단자들은 발붙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사이비이단자들이 수많은 이단사역자들의 헌신적인 노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지어 더욱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회중 모두 말씀의 사유화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서 저들 사교집단을 위한 비옥한 토양 노릇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한 반증 아니겠는가?
흔히 사이비이단자들을 증오와 분노의 대상으로 세워놓고 그들을 욕하고 저주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또 다른 패착에 다름 없다. 진짜 문제는 말씀 앞에 엎드리어 경청하기 보다는 말씀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려 내 맘대로 소유하려 드는 우리 자신, 나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이단자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잘못되었다. 그들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밝혀두는 것이 소위 근본주의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점에서 심각하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사이비이단을 옹호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이들은 잘못을 잘못이라고 밝히는 진리의 일꾼이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 의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사이비이단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쏟아내어 자기 의를 충족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결코 복음에 합당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 자신, 나 자신이 십자가의 말씀 앞에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자신, 나 자신 안에 가득한 교만과 아집과 욕망을 하나님 말씀 따라 비워야 하지 않겠는가?
왜 한국교회에 사이비이단이 창궐하는가? 하나님 말씀이 사유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가 사유화되는 것이 어디 우연인가? 하나님 말씀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일개 개인, 일개 집단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종속되기 시작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만민을 구원하고, 모든 사람, 특히 억눌리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고 해방하시는 기쁜 소식이기를 그치며, 죽음과 멸망으로 악순환해 빠져들어가는 역기능적 행태를 벗어날 수 없다.
한국교회여,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라!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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