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5. 18:49

관상기도에 대한 김남준 목사의 견해

예장합동 신학부가 주최한 2011년 한국 개혁주의 신학대회에서 관상기도가 다루어졌는데, 어김없이 이 교단의 강렬한 근본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첫 번째 발제자 김남준 목사의 발언이 눈에 띈다. 발언 전문을 보지 못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기사에 나온 대로라면 그는 '건전하고 올바른 신학적 판단으로 봤을 때 관상기도는 신비주의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이 주장에 따르면, 김남준 목사는 존 파이퍼를 포함하여 관상기도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소위 '복음주의자'들이 '불건전하고 그릇된 신학적 판단'을 저질렀다고 에둘러서 말한 셈이 된다. 나아가, 관상기도를 언급하고 가르치는 미국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교가 '불건전하고 그릇된 신학적 판단'을 퍼뜨리고 있다고 말한 셈이 된다.(*1)

도대체 '건전하고 올바른 신학적 판단'의 기준이 뭔가? 김남준 목사 자신의 판단인가? 혹은 예장합동 신학부의 판단인가? 혹은 그들에게 암묵적 자기검열을 하도록 보이지 않는 압력을 넣고 있는 예장합동의 교권세력의 의중인가? 혹은 '그들'이 이해하고 파악한 한계 안에서의 '오직 성경'인가? 자신(들)과 판단이 다르면 불건전하고 그릇된 판단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참으로 딱한 독선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가 말하는 '건전하고 올바른 신학적 판단'의 내용이라는 것이, 겨우 '관상기도가 이교적 신비주의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로 흘렀거나 흐를 위험을 내포한다'는 식이다. 미안하지만 바울과 요한의 '성경적 신비주의'라는 것도 있으며, 성경 안에는 수많은 '이교주의'가 구원사 안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 두고자 한다.

'누가 이론을 제기할지라도 관상기도는 종교다원주의의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김남준 목사의 주장이 자기억견의 일방적인 선포와 무엇이 다른가? '누가 이론을 제기할지라도'라니, 이 얼마나 막무가내식 사고방식인가? 관상기도를 한다고 곧 종교다원주의가 된다는 얘기는 도무지 금시초문이다. 개혁교회가 복음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상적 원천으로 삼고 있는 서방 최대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관상기도의 대가였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과연 종교다원주의로 흘렀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사에서도 거의 마니교적 이원론에 방불한 배타적 교회중심구원론의 대변자라는 것이 엄연한 사실관계다.
관상기도가 또다른 의미에서의 정신적 번영주의라느니, 자아 중심의 실용적 사고니 하는 김남준 목사의 비판은 그가 얼마나 관상기도를 모르고 있는지 스스로 폭로할 뿐이다. 관상기도는 빌립보서 2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뒤따르는 기도로서, 정신적 번영주의나 자아 중심성과 극명하게 대치되기 때문이다.

김남준 목사말고 다른 신학자들의 주장은 어차피 비슷비슷하니만큼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관상기도를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복음주의자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이 근본주의자들의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과연 성경의 정신에 부합하는지 심히 의문일 따름이다. 자신이 이해하고 파악한 범위 안에 하나님의 계시를 가두는 행위야말로 가장 반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유대율법주의자들이 자기중심적 선민의식과 협소한 자신들의 계시이해로 동료그리스도인들과 이웃종교에 섣부른 총질을 해대는 행태를 빼다박았고, 가깝게는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동생으로서 부족함 없는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합동교단이 추구하는 신학의 형님뻘쯤 되는 미국 웨스트민스턴 신학교의 조직신학교수 마이클 호튼이 펴낸 The Christian Faith (2011)를 훑어 보고 있다.(*2) 루이스 벌코프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신학의 흐름에 대해 상당한 구색을 갖추면서도 비교적 덜 무지막지한 논조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개혁 정통주의적 견해를 재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에 조만간 이른바 원조보수개혁주의를 외치는 노선에서 즐겨 인용될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은 1000쪽 정도의 꽤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논점에 대해선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얼버무리곤 하는 게 감지된다. 더욱이 유감스러운 것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신학자들의 견해를 학문적 서술스타일에 맞지 않게 비꼬고 희화화해 버리곤 한다. 이를테면, 호튼은 몰트만이 기존 신학에서 비성경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자기 신학을 펼쳤다고 기술하면서, 곧바로 그 신학의 배경은 블로흐와 헤겔의 철학, 유대교 카발라사상 따위라고 쓴다. 그러니까, 몰트만의 생각은 비성경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에둘러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17세기 개혁정통주의를 따르는 자기 견해가 '성경적'이라면서 몰트만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몰트만이 끌어오는 모든 성경적 전거와 문제의식은 싹 무시하고 내가 읽은 성경만이 진짜 성경이라는 식의 그의 논조에는 스스로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척 하지만 비성경적인 오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호튼은 그와 같은 그림자에 정작 중요한 논점이 가리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는 책의 부제를 순례자의 신학이라고 했지만, 순례자의 신학에 마땅한 겸손과 사려깊음, 성경적 관용과 공교회의 연합정신에 관해서는 자신이 권두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충분히 고려해 봤는지 의문스럽다.

김남준 목사와 예장합동 신학부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사안은 다르지만 저변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은 동일하다. 그러나 한국의 동생들은 아직 미국의 형님에게서 자기 확신을 (그나마) 덜 노골적이고 덜 일방적으로, 덜 전투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의 형님이나 한국의 동생이나 협소한 자기 확신이 비성경적인 오만으로 진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덧붙임]
*1: 미국의 건전한 복음주의 계통 신학교 대부분이 관상기도를 언급하고 가르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미국 아멘넷 자유게시판의 '나그네'님 글을 참고하라.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언급하고 가르친다. 렉시오 디비나는 관상기도가 이루어지는 주요한 채널이며, 특히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동원 목사의 경우 관상기도는 주로 렉시오 디비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그네님은 실질적으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관상기도를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관상기도라는 용어를 피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 '관상'의 상태에서 기도했느냐와는 별개로 - 사실상 관상기도이다. 앞서 포스팅한 '관상기도에 대한 존 파이퍼 목사의 견해'의 두 번째 덧붙임 글에서 밝힌 필자의 나그네님에 대한 코멘트도 참고하라.
*2: 이 글을 쓸 당시 마이클 호튼이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교수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분은 캘리포니아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의 조직신학 교수이다. 영문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분교로 출발했다가 독립한 또다른 학교이다. 그러나 신학노선은 분명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보수개혁신학노선을 이어 받았다. (20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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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스도와사랑 2011.07.31 23:40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전혀 비판하는 생각이나 의도는 아닙니다만 이렇게 잘 쓰시는 실력을 갖고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그리스도의 몸된 이들을 사랑하고 품고 나아가 구원 받지 못한 잃어버린 자들에게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하며 헌신하는 저와 필자님이 되시길 간구합니다.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2. 그리스도와사랑 2011.07.31 23:54 address edit & del reply

    제 과거의 모습을 보는것 같습니다만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비판적 사고로 글 쓰는것은 참 좋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많은 귀한 일들을 하신 주님의 사람들을 너무 함부로 단편적으로 비하시키듯 말하는것은 필자의 겸손과 상대방을 향한 존중의 결여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제 글에 멋지고 화려한 답변을 다실 수 있으시겠지만 진심으로 필자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큰 주님의 뜻과 기쁨을 함께 실천하고 실행하는 저와 필자님이 되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런 부족한 글들을 남김을 양해해 주시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늘 주님의 은혜 안에 평안과 기쁨이 넘치시길 기도드립니다.

    • 멋진비움 2011.08.01 10:12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니까 어르고 빰치는 말씀이시군요.^^;
      김남준 목사님에 대한 이 정도 비판이 유감이시라면, 이동원, 최일도, 존 파이퍼 목사님, 그리고 수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마녀사냥당하는 작태에 대해선 더욱 유감이신지요? 바로 그런 근본주의자들의 광란이 대한민국에서 복음전도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 두겠습니다.

    • 그리스도와사랑 2011.08.01 10:44 address edit & del

      참 재밌게 글을 쓰시는군요 ^^ 어르고 뺨친다... 굳이 원칙적으로 하자면 아마 두 단어가 전위 되어야 할것 같군요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조금도 필자님의 마음을 언짢게 하거나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주된 비판을 위한 비판을 넘어서 나 개인의 매일의 삶 속에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느냐를 질문 해보고 고뇌함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부족한자 몇마디 남겼습니다. 물론 많은 시간 여러 글들을 읽고 비평과 생각을 공유함이 유익하죠. 하지만 영원히 복되고 더 귀하고 아름다운 사역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분의 사랑과 겸손의 태도를 지니길 간구하며 매일의 생활에서 유형적인 면에서 타인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아직도 수십억명도 더되는 잃어버린 자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확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필자님의 심기를 생각해서 더이상 답변을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이 세상에 어느 한사람 비판 받지 않을 점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 자신도 주님의 모습의 티끌만큼도 못미치는 부끄럼이 많을진데. 내눈에 들보를 빼려고 애쓰고 노력하기에도 인생은 짧기에 저는 악하고 그릇된 옛모습을 회개하고 부족하지만 날마다 가장 큰 두 계명을 실천하려 몸부림치고 싶습니다. 부디 기도하고 바랍기는 제 중심의 의도를 보시고 좋은 뜻으로 이해하시어 아주 조금이나마 필자님의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헌신의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3. 정화된밤 2011.11.23 02:51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나눔'블로그에서 흘러흘러 여기까지 와서 좋은 글 많이 보고 갑니다. 몇달 전에 쓰인 글이군요. 관상기도에 대해서 소위 '보수'주의 자들이 하도 알레르기적인 극렬한 반응을 보이길레 한번 연구할만한 가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던 차에 이 글을 읽습니다. 충분히 공감할만하고 납득할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근본주의에 가까운 신학교에서 아주 진절머리가 났던터라서...그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나저나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와 사랑'님의 답글을 보면서 그분의 의도는 알겠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건전한 비판 속에서 교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리뭉실하게 덮는 것이 늘 옳은일일까?라는 생각도 해보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 멋진비움 2011.11.23 07:00 신고 address edit & del

      쉔베르크의 음악이 떠오르는 멋진 닉네임을 쓰시는군요.
      변변치 않은 글에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나눔 블로그는 방대한 서평을 쓰시면서 한국교회의 근본주의 문제를 알리시는 곳이라 저도 관심있게 눈팅하곤 합니다. 제 글을 소개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4. 정화된밤 2012.04.15 11:44 address edit & del reply

    다시 이 글을 읽으며 생각난 것인데 이런 개인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다녔다고 하기도 챙피하네요)학교의 총장이란 사람이 "왜 여성안수가 안되냐"는 질문에, "성경에 그렇게 나와있다! 그리고 여성안수를 허용하면 결국 동성애자 안수까지 허용하게된다"는 말을해 한참을 황당해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허허! 생각만해도 웃기죠?? 그런데 거기에 옳다고 긍정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사실....어쩌면 좋을까요? -_-;;

    • 멋진비움 2012.04.19 21:53 신고 address edit & del

      귀한 댓글을 주셨는데 확인이 늦었습니다. 말씀하신 주제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고 댓글을 드리든지 조만간 별도의 글을 띄우든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5. 기쁨 2012.07.06 11:14 address edit & del reply

    참 힘드시겠어요!
    비움에는 앞에 멋진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지요.
    또 하나의 불쌍한 영혼을 보며...

  6. 기혼의 샘 2012.11.07 13:42 address edit & del reply

    한국에는 머리수가 많은 곳이 정통이다. 그리고 쪽수에 밀리면 이단이다. 이단이라는 딱지로 수많은 사람들의 명예를 더립힌 한기총은 돈을 받아 처머그면서 이단의 할아비 같은 짓을 서슴치 않고 벌였다.중세의 마녀사냥보다 더 독하고 뻔뻔한 짓들을 하면서 이동원 목사에게 이단이라고 한다. 이단이란, 무서운 말이다. 그를 죽이는 말이다. 나는 오늘부터 한기총을 이단이라고 말하고 다닐것이다. 이 교만한 이단 한기총은 회개하라.
    그리고 김남준 목사님, 눈을 크게 뜨시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지십시요. 그건 신학이 아니라 목사님 개인의 성격에 한계라고 보여집니다.

    • 멋진비움 2012.11.07 16:08 신고 address edit & del

      의견에 감사합니다만 개인이나 단체의 인신을 공격하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