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7. 21:59

대통합인가, 야합인가?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이 소위 대통합을 이루었다.


허약한 민주진영의 체질을 생각할 때, 대통합과 연대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그 면면이 참 납득이 가지 않는다.


통합신당을 하게 된 정책이 기초공천폐지였단다. 원래 이 기초공천폐지는 새누리당의 공약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정책이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해 비판한다? 

물론 좋지. 


그런데 여당의 공약불이행에 대한 비판으로 우리는 기초공천폐지를 하지 않겠다? 민주당과 안철수신당 모두? 그래서 야권이 대통합한다고? 새누리당이 그러면 아이 무셔라 하고 공약을 이행하는 상식이 있는 종자들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면 기초단체장선거에서 새누리당만 후보를 죄다 내게 되면. 그래서 기초단체장들이 새누리당 천지가 되면. 응? 이거 대체 어쩌자는건가??


야권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새누리당의 X맨이 아니고선 이건 도저히.


게다가 안철수의 현실인식이 골때린다.

"소모적인 이념논란"을 벗어나기 위해 6.15 공동선언을 계승한다는 정강을 빼신단다! 

사실 이분의 정치 입문 이전부터 우려했던 대목이었는데... 역시나 고집을 부리고 있나보다. 

하... 이분이 정치하겠다고 나왔을 때부터 에러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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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26. 13:47

노르웨이 테러사건 용의자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2)

노르웨이 테러사건에 대해 지난 포스트에서는 테러범 브레이빅에게서 통상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로서의 특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미국적 의미의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의미의 기독교 '원리주의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문제의 핵심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아니라 반다문화주의에 있다고 주장했었다.

지난 포스트에서의 필자의 주장은 그가 dokument.no에 올린 글모음과 노르웨이 언론기사들을 주로 근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테러범이 앤드류 버윅(Andrew Berwick)이라는 이름으로 유포한 1500여쪽 분량의 '2083 유럽독립선언문'은 미처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이때문에 과연 정말 사실관계에 부합한 것인지 여전히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해서, 문제의 '선언문'을 구해서 검토해 본 결과 앞의 포스트에서 제기했던 필자의 주장을 상당부분 뒤집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상에 대한 의혹과 분노를 세상에 대한 악마시와 자유주의신학 단죄와 음모론, 그리고 수구세력에 대한 정치적 압력행사로 푸는데 머물러 있지 않고 테러라는 행동으로 옮기는 새로운 유형의 근본주의라니, 불쾌감을 넘어 정말 놀라움과 전율마저 느껴졌다. dokument.no의 글모음에서 과대망상끼만이 풍겨나왔다면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이 '선언문'에서는 기괴한 정연함이 느껴졌다.

테러범이 신봉하는 '기독교'의 윤곽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본주의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하에서 괄호 안의 숫자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선언문'의 쪽수를 나타낸다.)

1. 성경을 신비화, 절대화하고 자기 신념의 전거로 삼는다.

'선언문'에 나타나는 근본주의적 특징은 우선 성경을 하나님의 신비한 진리의 원천으로 보고 성경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주장하며, 성경의 전거를 대어가며 자기 신념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점에 있다. 

- '남성들의 위대한 문학작품과 하나님의 진리로서의 성경을 읽기 보다 르네상스 시대 여성의 역할이나 문학으로서의 성경을 연구하는 페미니스트적이고 맑스주의적인 시대분위기'를 개탄한다.(28)
- 무슬림들에게 성경이 모독당했지만 기독교에서 별 반응이 없는 파키스탄의 사례에 대해 분노를 표시한다. (428) 
- 꾸란에 견주어 성경이 문학적으로 더욱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극우블로거 Fjordman의 글을 통째로 인용하기도 했다.(706f.) (자신은 Fjordman의 글을 자신에게 중요한 책 목록에 넣었다.(1407) 그러나 Fjordman가 2005년 이후 활동한 것으로 보아 범인이 2009년 이후 구체적으로 테러를 준비하면서 자신 혹은 자기 신념을 중요한 것으로 돋보이게 하려고 예전에 쓰던 아이디를 일종의 멀티아이디로 언급했을 수 있다. 그가 '선언문'의 심화연구 파트에 실어놓은 성전기사와의 인터뷰에 나오는 성전기사도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다.(1349ff.))
- 그리스도인의 '자기방어'의 성경적 정당성을 상당히 길게 주장한다.(1327-34) (여기서 말하는 '자기방어'란 무슬림의 공세에 대한 자기방어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의 주장은 자의적인 취사선택이라는 근본주의 성경인용의 맹점을 그대로 답습했다.)
- 성경을 모독하거나 공격한 무신론자들을 열거하고 그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서부터 볼테르와 맑스를 거쳐 도킨스에 이르는 인물들이 열거된다.(1341ff.) (근본주의에서 성경을 신비화하는 전형적인 설교내용이다.)

그러나 브레이빅의 성경에 대한 집착은 성경영감론을 기독교의 시금석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근본주의과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오히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서구유럽전통의 모체로서의 기독교전통이며, 성경은 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성경관은 '오직 성경으로만'이라기보다 '성경과 전통을 동일한 경외와 존경으로 받아들이는' 가톨릭의 그것에 가깝다.

2. 성경의 왜곡과 변개를 주장한다.

'선언문'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근본주의적 특징은 성경이 원문에서 왜곡되고 변개되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는 현대성경이 가부장적 어휘가 아니라 양성평등적 어휘를 사용하고, 문자적 일치가 아니라 역동적 일치, 즉 문자 그대로 옮기는 번역이 아니라 뜻이 통하도록 옮기는 번역으로 자기 해석과 교리를 말하기 때문에 왜곡되었다고 믿는다. 아울러 그들, 즉 서구인들의 뿌리는 불가타성경이나 1611년 흠정역 성경이며, 이것이 무슬림에 대항하여 자기방어를 행사하는 기독교세계를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1137)

그러나 1611년 흠정역 성경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근본주의 집단 가운데서도 이단시되는 특정한 부류의 주장에 국한된다. 게다가, 흠정역과 무슬림 대항을 연관짓는 것이나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원문판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1611년판 흠정역 성경을 절대시하는 그룹들의 주장과도 다르며, 더더군다나 1611년 흠정역 성경은 무슬림에 대항하는 것과 아무런 역사적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브레이빅이 이들의 주장을 인터넷을 통해 접한 뒤에 자기 신념에 나름대로 갖다 붙이고 빼고 한 것으로 보인다.

3. 종교간 대화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의 진보적 어젠다를 비난한다.

그는 여러 곳에서 종교간 대화와 상대종교를 공존의 파트너로 인정하며, 각종 진보적 이슈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노동당 교회'가 된 현대 서구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다. (특히 1403등) 이 역시 근본주의 기독교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한다.

4. 예언에 대한 근본주의적 집착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왜 하필이면 '2083년'인가에 대해 주목해 본다. 혹시 특정예언에 따라 시간표를 만드는 부류의 근본주의대로 기독교나 서구세계에 전해지는 소위 미래예언과 관련있는 게 아닐까? 이슬람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브레이빅이 이슬람에 관한 예언에 따라 자신의 시간표를 짰던 것은 아닐까?

이슬람과 범유럽세계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브레이빅이 기독교 근본주의의 예언에 대한 집착을 물려 받았다면 찾아내게 되었을 예언가로 바바뱅가라는 이가 있다. 그는 이슬람이 서구세계를 석권하리라는 내용의 예언을 했다. 노스트라다무스와 달리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바바뱅가의 예언이 원용된 경우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브레이빅이 기독교 근본주의의 프레임 속에서 어떤 시간표를 짜고자 했다면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바바뱅가에 따르면 유럽은 2010년 11월에 시작될 제3차 세계대전에서 핵전쟁을 겪고, 핵전쟁 이후 이슬람과 전쟁을 하여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2043년에도 이슬람은 유럽을 지배하고, 이슬람에 대한 무장봉기가 이루어지며, 2066년에는 미국이 이슬람 치하의 로마를 공격하게 된다. 2076년에는 계급없는 사회가 이루어지고, 2084년은 '자연의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브레이빅이 유독 2083년에 맞출 때 이 '예언'을 의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명확하게 브레이빅 자신의 말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근본주의 프레임을 따라 적용해 본 나의 추측임을 밝혀둔다. 

(4번을 제외하더라도) 이상과 같은 브레이빅의 '기독교'는 근본주의 타입과 겹치는 면모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점에 무게를 두어 브레이빅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브레이빅의 '기독교'는 '브레이빅 유형'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근본주의로서, 일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와 온전히 구분된다. 이점은 앞서 필자가 주장했던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5. 그가 (근본주의) 기독교를 (취사)선택한 것은 순전히 실용성 때문이었다.

그의 '기독교'는 전형적인 근본주의의 컬트적 속성와는 거리가 멀다. 즉, 전형적인 근본주의는 성경으로부터(만) 취사선택한 신념체계로서 근본주의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배타적인 창이 되고자 하는 데 비해, 그는 스스로 자신이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인 척하려고 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종교는 약한 사람의 버팀목일 뿐이다. 자신은 아직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진 않았지만 거사를 치를 때는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기독교는 "참호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라는 말로 간추릴 수 있다.(1344)
그는 스스로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는 것이 실용적인 이유에서라고 밝힌다. 그는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서 실용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으로서 기도나 성찬참여를 들고 있다. 또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죽음 이후에 내세가 있다는 믿음이 실용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1345)
아울러 그가 기독교적 가치를 가진 그룹과 연대하기로 선택한 것은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라고 밝힌다. 그는 많은 민족주의 그룹이 기독교의 깃발 아래 싸우기를 거절하는 것을 이해하긴 하지만, 기독교는 남유럽과 북유럽을 하나로 묶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1380ff.)

기독교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테러리스트가 나타났다며 새삼 혀를 차고 고개를 흔들며 좋아하는 기독교안티와 이웃종교인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바로 당신들이 신봉하는 신념이나 종교를 포함하여 어떤 신념체계나 종교든 실용적인 이유에서 악용될 수 있다.


6.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다한 개신교가 가톨릭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403f.)

이것은 dokument.no 글모음에서도 일관되게 나온 얘기다. 이 주장은 두말할 것 없이 그의 범유럽주의에 대한 '실용적' 관심과 일맥상통한다.

7. 그는 자신을 템플러기사라고 지칭하면서 프리메이슨의 일원으로 지칭한다.  

문제의 '선언문' 표지에서부터  노르웨이 프리메이슨의 문장이 나온다. 그는 자신을 Justiciar Knight Commander, Knight Templar Europe, Knight Templar Norway 등의 프리메이슨 칭호로 지칭했다. 앞의 포스트에서 지적했다시피 통상적인 근본주의자라면 자신이 프리메이슨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의 포스트에서 소개했듯이 노르웨이 프리메이슨 측은 사건이 일어나자 브레이빅을 제명하고 자신들과의 관련성을 서둘러 부인했다.

'선언문'에 따르면 그는 2010년에서 2030년까지 '첫번째 국면' 동안 자신이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템플기사단그룹인 PCCTS에 개인이 가입의식을 치르도록 했다.(1113f에 가입의식이 자세히 묘사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템플기사단은 기독교의 '자기방어'를 위한 저항운동단체를 뜻한다.(1118) 저항은 비폭력운동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1121f.) 그는 '청년유럽운동'(1127)과 같은 전위조직을 통해 우익자유주의자, 기독교 극단주의 무장단체, 전투적 민족주의 등의 그룹을 묶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슬쩍 흘리기도 한다. 그는 자신 뒤에 뭔가 굉장한 배후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려고 한다.

필자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소위 프리메이슨이 어떻게 그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느냐이다. 많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프리메이슨이라면 치를 떠는 것과 달리, 브레이빅은 프리메이슨 템플 기사단이 서구 기독교세계의 이슬람교에 대한 자기방어를 위한 것으로 파악한다. 실제로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프리메이슨과 별개로 '기사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브레이빅은 자신이 말하는 '기사단'을 기독교의 또다른 양태로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브레이빅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범유럽주의를 위해 실용적으로 선택된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허울이고, 실체는 범유럽주의이다. 이와 같은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의 연결은 근본주의의 프리메이슨 음모론에서 나타나는 적대관계와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프리메이슨 음모론으로 비약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브레이빅의 '선언문'을 검토하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거기 나오는 내용들이 도대체 현실은 어디까지인가, 어디부터가 그의 망상 또는 희망사항인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과연 브레이빅 배후에 어떤 무장단체가 있는지, 혹은 허세인지 여부는 노르웨이 경찰 당국의 수사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브레이빅 개인의 허세로만 보자니 정신착란의 정도가 너무 심하고, 배후에 정말 어떤 그룹이 있다고 보자니 이 또한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모로 보나 이 사건은 비극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이 약간 길어졌기 때문에 결론을 요약해보도록 하자.

- 브레이빅이 말하는 타입의 기독교는 근본주의와 프리메이슨 템플기사단을 합한 형태로서, '이슬람 세력에 대한 기독교 세계의 자기방어'를 위한 범유럽주의와 다름없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기 나름의 기독교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와 같지 않다. 그것은 기독교 원리주의 내지, 자신이 표현한 대로 기독교 극단주의라는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 브레이빅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정신적 안정과 범유럽주의라는 사회문화적 가치의 활용이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선택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1)

근본주의나 프리메이슨, 심지어 그의 의심스러운 정신상태가 아니라, 테러범이 유럽의 다문화주의와 관용에 반대하여 테러를 저지른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에도 동일하게 노출되어 있고,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2)


[덧붙임]
*1: "그는 단순한 테러범일 뿐 기독교인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사에서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한다. "브레이비크가 잘못된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는 결정적 단서는 선언서 1307쪽에 표현한 자기 정체성이다. 그는 "만약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다면 종교적 크리스천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 관계를 갖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문화와 사회, 도덕적 토대 안에서 기독교를 믿는다. 이것이 나를 기독교인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근본주의 성향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두 분 신학자들이 근본주의 기독교와 테러범의 '기독교'를 구분짓는 주장도 대체로 괜찮았는데, 제목은 교계의 딱한 현실부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 좀 민망스럽다. 아예 확 세게 나가야 한다는 심산이셨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원... 사고치고 집나간 자식은 자식도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짚어두어야 할 사실관계는, 이 기사에서 근본주의와 테러리즘과 관계가 없다고 전문가들이 말했다고 한 부분은 명백히 틀렸다는 점이다. 나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 찾아보면서 새삼 인식하게 된 부분인데, 기독교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그룹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인종차별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잘 알려진 백인기독교근본주의그룹 KKK단을 빼놓을 수 없다. 이밖에도 '하나님의 군대(the Army of God)', '그리스도의 어린 양(the Lamb of Christ)' 등이 낙태, 애국심 등과 같은 특정사안에 대해 테러를 저지른 극단적 근본주의 그룹들이 존재해 왔고, 오늘도 미국 어디에선가 암약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사례와 기독교 테러리즘에 관한 온라인자료로서 영문위키백과의 해당항목을 참고할 것.) 더 나아가, 기독교는 북아일랜드, 세르비아 등 세계분쟁지역에서 폭력과 테러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기독교는 분명 잘못되고 거짓된 형태의 기독교이지만, 이건 기독교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누가 말했든 간에 그의 교회관은 왜곡되어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배타적이고 분파주의적인 교회론으로는 애시당초 공교회의 회개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게 된다. 이런 교회론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삼일절주일에 한국개신교회 강단에서 민족대표33인중 절반 이상이 개신교인이었고, 개신교가 삼일운동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회주체였다는 영광스러운 과거만을 기억하고, 주기철, 길선주 목사 같은 극소수 목회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이 신사참배의 참람된 변절과 배교의 죄악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않으며, 공교회적인 참회를 행하지도 않는 것이 아닌가?
이런 유의 배타적이고 분파주의적인 교회관는 근본주의적이다. 테러리즘을 저지르지 않고 음모론이나 사이비이단, 자유주의, 공산주의 단죄에 골몰해 있기 때문에 그 배타적인 폭력성이 당장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근본주의가 테러리즘으로 발전하는 것은 단지 한끝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들의 희망사항과 본인의 주장 사이에 분명히 선을 그어두고 싶다. 노르웨이의 테러범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기독교 근본주의의 신봉자는 아니다. 나는 두 편의 글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이에 관해 노르웨이 테러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무관함을 주장하는 이들과 입장을 같이 한다.
그러나 테러리즘과 기독교 근본주의가 결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이들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본 블로그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논지를 재확인해 두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기독교 근본주의 역시 극히 위험한 폭력성과 폐쇄성, 배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속성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사회적 관계의 폭력을 저지르는 형태로 이미 수없이 표출되어 왔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무력의 사용을 정당화한 사례도 결코 없지 않다.
문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자신이 스스로가 근본주의자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복음주의나 개혁주의 같은 다른 이름으로 진짜 정체성을 남들에게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공교회의 형제요 친구인 근본주의자들에게 주님이 은혜를 더하시기를! 죄많고 허물많은 우리 자신과 모든 형제자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동일한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2: 미국이 조지 W 부시 시대에 테러 이후 교회는 근본주의화하고 국가는 경찰국가로 돌변한 것과 달리 노르웨이 사회는 이 비극적 사건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자유, 관용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서 노르웨이에 대한 존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회통합전략으로서의 관용에 관해서는 좀더 심도있는 연구와 토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와 자유, 관용의 가치를 포기할 까닭은 없다. 테러의 비극을 겪은 노르웨이 사회의 의연한 대처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다. 부디 우리 한국사회도 자유와 관용의 가치가 뿌리내리는 위대한 사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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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n 2011.07.27 23:18 address edit & del reply

    그의 종교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군요. 범인에 대한 수사가 진행 될 수록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어떤 교리가 그의 범행 동기로 이어졌는지는 아직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방어에 대한 것이 언급되었지만, 자기방어는 기독교 만이 아닌 오늘날 왠만한 사회에서 인정 되고 지지 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그의 테러 동기였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미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테러에 동기를 부여한 것은 극단적 배타주의라고 보여집니다; 특정 기독교의 교리가 그를 그런 극단적 배타주의로 몰고 갔음이 입증 되지 않는 한 이 사건을 기독교 원리주의자의 범행으로 기술하는 것은 삼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인에 의한 테러, 예를 들자면 무슬림에 의한 테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의 특정 교리가 범인을 그런 테러로 몰고 갔다는 것이 입증 될 때만 '무슬림 과격사상에 의한 테러'라고 기술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멋진비움 2011.07.28 04:35 신고 address edit & del

      특정종교의 교리가 테러로 몰고 갈 때만 원리주의라고 해야 한다는 게 Hun님의 생각이시군요.

      그러나 예컨대 독어판 위키의 근본주의 항목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뿌리로의 복고를 요구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철저하고 특히 불관용적인 수단으로 강제하는 종교적이거나 세계관적인 운동"을 '근본주의'라고 지칭합니다.

      노르웨이 경찰이 브레이빅을 '근본주의자'라고 표현한 것도 이 넓은 범주로 말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낱말의 정의상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브레이빅은 기독교를 자기 테러의 이데올로기적 전거로 들먹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근본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말에서는 근본주의가 미국의 특정 신학사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엉뚱한 뜻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첫 번째 글은 이 점을 밝히면서 미국적 근본주의와 혼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리주의'라는 용어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고, 두 번째 글은 브레이빅의 글을 좀더 검토해 보니 내 견해를 확인해주기도 하지만 생각보다는 미국 근본주의와 닮은 점들이 있더라는 내용입니다.

  2. Hun 2011.07.28 10:54 address edit & del reply

    테러로 몰고 가야만 원리주의라고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원리주의자일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원리주의가 어떻게 그를 테러로 몰고 갔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원리주의가 테러의 동기였던 것 처럼 기술하는 몇몇 언론들이 있어서 의견을 달아 보았습니다.

2010. 12. 16. 19:40

그들의 정의

현정부 들어 정권친화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이 군인사가 공정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전총장을 꼬투리잡아 끌어내리고 영남출신이 요직을 독식했는데 공정했단다.

헛웃음이 나온다. 날치기예산통과로 영포라인 예산은 실컷 챙기면서 '이것이 정의'라고 외치고, 영유아예방접종, 결식아동급식 예산은 전액삭감, 노동자들의 임금하락폭 OECD국가 중 1위, 인권이 70년대로 후퇴한 터라 인권위원장이 주는 상도 수상자들이 줄줄이 거부하고, 무사국무총리실 등 다양한 기관에서 경쟁적으로 민간인사찰을 공공연히 저지르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 뭐가 대체 그렇게 공정했을까. 백성의 고혈을 짜내 당신들끼리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이 공정인가.

500년을 지탱해오던 조선은 소수특권집단의 전횡 때문에 사회의 창조적 역량이 질식되어 결국 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일본이 사악하고 악랄한 술수로 강제병탄시켰기 때문인 것만도 아니라, 조선사회에 참다운 공평과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나라 이 땅에 과연 온전한 공평과 정의가 있는가. 온전한 인권과 자유가 있는가.
불쌍하고 딱한 우리 형제 북한의 처참한 상황과 견주면서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짓일랑 당장 멈춰야 한다. 그런 자기기만이 이 땅에 파멸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거대하고 막강한 이웃나라들에 둘러싸여 전범국이 아니면서도 국토가 두동강이 난 채 반 세기를 지낼 수밖에 없었던 작은 분단국가다.
또다시 소수특권층의 전횡이 저질러져서는 이 땅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역사 앞에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혀 불살라질 것이다.

소수특권층의 전횡에 대해 시민사회의 강력한 비판과 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뛰어난 공평과 정의, 탁월한 인권과 자유가 이 땅에 이룩되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뭇백성의 비상한 창조적 역량이 꽃피울 수 있다.
공평과 정의, 인권과 자유의 힘이 우리 사회에 가득히 흘러 넘칠 때 비로소 이웃나라들의 버거운 존재에도 불구하고 두동강난 한반도가 하나로 힘차게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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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13. 15:44

천주교 원로사제들의 성명에 존경과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최근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사대강사업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정권, 친기득권적 행보를 보이면서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하던 한국천주교 안팎의 많은 사람 가슴이 더욱 휑하고 추웠다. 

그나마 정의구현사제단의 지속적이고 올곧은 정권비판이 있어서 위안이 됐지만, 이 역시 천주교 일부 고위층의 억압과 견제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만난 상태였다.

이 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심각한 위협을 맞이하고 있는 이 암울한 시국에 원로사제들이 추기경에게 용기있게 용퇴권고를 한데 대해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개신교 목회자들도 조국의 어지러운 현실에 대한 각성과 회개가 담긴 성명을 내주길 촉구한다.

특히 개신교회가 역사의 현실에 동참하는 데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는 정교분리원리라는 종교이데올로기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구한다.

정교분리원리는 어용교회가 실제로는 불의한 정권과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역하면서도 표면적 무관심과 몰가치한 중립으로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 좌파빨갱이정치목사를 힐난하는 바로 그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반동적 극우주의 행태를 보이면서 이를 신앙과 민주주의의 미명으로 포장해 왔다. 적어도 주기도문을 따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단지 교회나 영적 세계만이 아니라 피조세계와 역사의 현실에도 임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지금과 같이 정교분리원리가 악용되어 온 현실에 대한 정당하고 겸허한 신학적 비판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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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1. 15:01

권위주의 시대의 도래?

극단적인 경우 대한민국에 어쩌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전체주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상황을 보면 여건이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있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다. 

1. 남북갈등이 심화하여 여론이 한 방향으로 경직되기 쉽다. 
적절히 증오와 분노를 부추겨주면 그 다음은 스스로 동력을 얻어 돌아가게 될 것이다.

2. 현 대통령과 정권이 레임덕을 타개할 계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현 정권은 전 정권에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햇볕정책을 3년간 철저하게 중단하고 부정하면서 대북강경고립정책을 구사해 온 현 정권이 막상 일이 터지자 햇볕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는 데서 현 정권의 기본마음가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북갈등심화 덕분에 현 정권은 자신과 견해를 같이 하지 않는 비판세력을 북한과 동일시하여 통제하는 전략을 보다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애꿎은 희생양을 만들어 악마화함으로써 자기칭의를 도모하기 위해 온라인글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권비판세력에 대한 사찰과 검열이 의로운 분노의 이름으로 일상화될 수 있다. 민간인사찰과 대포폰의 존재 따위는 그 나쁜 조짐으로 보인다.

3. 언론방송장악이 사실상 거의 이루어진 상태다. 
언론방송권력을 견제할 수단이 현재로선 실질적으로 없어 보인다. 정권과의 이해관계호응에 따라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도구역을 자임한다면 기득권층으로선 여론을 순식간에 조종통제할 수 있게 된다. 정권과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서 내보내면서, 이에 동조하지 않는 시민이나 집단은 색깔론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제압할 것이다. 
이미 이것은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 해왔고, 당대표가 공식적으로 '사이버전사'를 양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알바들이 내뱉는 몰상식한 극언이 정권의 정책이나 행동에 실제로 반영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정도가 되면 실질적으로 전체주의와 별 다를 것 없는 권위주의 사회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4. 야당과 시민사회가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해졌다. 
김대중, 노무현 이후 실질적으로 민주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못했다. 야당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서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민의를 대변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5. 군검경이 현 정권과 긴밀히 호응하고 있다. 
군은 노무현 시절 제2 롯데월드 설립허가를 안보를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하다가 현 정권 들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검찰은 자신들에게 자율권을 준 노무현 대통령을 주변사람들을 꼬투리잡아 죽였지만, 동영상 증거까지 남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까지 나서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했다. 
경찰은 현 수장부터가 철저히 군사독재시대의 악습이 발상과 처신에 몸에 배어 출세를 거듭했다.
군검경은 현 정권의 이해관계에 적극부응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몇 해전 저명한 찬송시인 송명희님이 '표'라는 소설에서 조만간 대한민국에 베리칩을 표로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대환란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666표를 두려워하고, 적그리스도가 교회와 세상을 커다란 고통에 빠뜨릴 대환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휴거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근본주의 내지 세대주의 종말론 프레임에서 나온 얘기다. 
조금만 찾아 보면 이와 비슷한 얘기들이 꽤 많이 나돌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 오워의 전쟁예언을 얘기하는 이들도 이 프레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자는 그들의 최선의 의도는 존중하지만, 세대주의 종말론은 애시당초 성경적으로 합당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송명희 시인이 그리는 것과 같은 시나리오에 딱 한 가지 공감하는 부분은 이대로 가면 전체주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아직 그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일말의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한 때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란다.
그러나 만일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이 온다면 체재의 속성상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정당하고 의롭다고 굳게 믿으면서 모든 악행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이 대목에 대해 얼마나 깨어 있는가? 이 점에서 다시금 마음이 갑갑해진다. 
바르멘신학선언을 작성해 독일교회의 대히틀러투쟁을 고취했던 바르트나 히틀러암살계획에 가담했던 본회퍼를 신학교나 설교에서는 곧잘 들먹이지만, 막상 교회현장에서는 목회자나 대중 모두 워낙 몰역사적인 개인신앙에 절어 있어서 역사참여를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공이데올로기에 열광하면서 기득권의 행태에 철저히 호응하고 있으니 이 모순과 부조리를 어찌하면 좋을꼬... 하나님께서 도움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덧붙임]
- 미국의 유니테리언 목사이자 예수 세미나의 펠로우인 데이빗슨 뢰어는 미국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정치적 근본주의에 호응하여 새로운 파시즘을 초래할 것을 내다보며 우려와 비판을 표명한 바 있다. 뢰어의 유니테리언주의나 예수세미나식 역사적 예수 연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정치신학적 문제의식은 동감이다. 한국 상황은 미국과 딱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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