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2. 11:07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선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주님을 맞이하는 데 별 소용없는 것들부터 짚어보자.

- 베리칩과 유럽연합 (혹은 북미연합)의 최신정보나 적그리스도의 후보리스트를 꿰고 있어도 소용없다.
-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을 것이냐, 혹은 천년왕국 후에 있을 것이냐도 상관없다.
- 재림이 7년 대환란 전에 있을 것이냐, 중간에 있을 것이냐, 후에 있을 것이냐도 상관없다.
- 그밖에 잡다한 종말론, 어떤 사람들이 보거나 들었다는 꿈과 환상, 혹은 말세론적 운명지도에 관한 모든 장광설은 이런 별 소용없는 것들에 뭉뚱그려 넣어도 된다. 


그렇다면, 종말의 시금석이 되는 그 사건들이 일어난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배교와 멸망의 아들의 출현을 알아맞춘다면 호기심 가득한 종말의 퀴즈게임에서 몇 점 더 받아 휴거될 자격에 당첨될까?

예수님 말씀인 마태복음25장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24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말세에 있을 현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종말과 난리에 대한 소문, 적그리스도의 출몰 따위로 휘둘릴 것을 예고하신다. 마태복음 25장은 24장의 종말에 대한 예고에 이어 종말에 관한 세 비유를 담고 있다. 

열 처녀의 비유는 '기름'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며, 달란트 비유는 '적은 일에 충성'할 것을 당부한다. '기름'이나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최후의 심판 비유가 잘 보여준다. 최후의 심판 비유는 약자를 돌아보며 더불어 사는 신자의 삶에 그리스도를 미리 뵙는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신자가 나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약자와 더불어 살지 않았다면, 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나날의 삶의 과정 속에서 거룩한 삶으로 빚어지는 구원의 여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닥쳐와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판의 시간표나 운명의 비밀지도 따위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종말의 시금석이 되는 종말론적 사건에 관한 말씀을 전해준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동일한 취지로 말씀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종말은 무엇보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 여기서 동터온 종말을 받아들여 변화된 삶을 살 때 미래의 종말에 영광이 예비되어 있다. 지금 여기서 옛사람의 종말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도록 하는 새사람으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미래도 없다. 죄에 대해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혀 죽음으로써 의에 대해선 산 자가 되는 삶(로마서 6장)이 곧 부활을 예비하는 삶이다. 한 마디로, 오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우리 자신의 썩을 것을 썩지 않을 것을 위해 심으면 된다. 그러기에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선언했다.(고린도전서 15:31) 

부디 여러 가지 희한한 성경해석이나 신통해 보이는 꿈과 환상 같은 것에 낚이지 말기 바란다. 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다. 오늘 주어진 당신과 나의 삶의 자리가 부활을 예비하는 자리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자리다. 지금 여기에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부활도 없다.

무엇이 십자가를 지는 삶인가? 무엇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인가?

7년 대환란과 666표의 위협에서 도피하려고 불안에 사로잡혀 기도와 찬양과 예배에 몰입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인가?
아무아무개의 종말과 전쟁에 관한 예언에 낚여서 들뜨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는 삶인가? 
이런 주장이 비복음적이라는 비판을 종교의 영이 시켜서 하는 악한 사람들의 핍박이라면서 순교자 콤플렉스에 사로잡히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인가?

정말 종말을 염려한다면 이런 데 관심을 두지 말고 지금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라는 게 바로 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막상 십자가를 져야 할 삶의 자리는 외면한 채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아무리 예배 많이 참석하고, 아무리 찬양 많이 하고, 아무리 꿈과 환상과 예언을 좇는다고 해도, 아무리 성경을 줄줄 욀 정도로 많이 읽는다고 해도 당신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는 데 아무 소용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장광설을 아무리 속속들이 알고, 심지어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셨던 그날과 그때를 알아맞추기까지 하더라도 당신은 신자의 부활에 결코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가 신자의 부활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조그만' 일상적 소망을 위해 투신하지 않은 채 종말의 최종완성만 희망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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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1. 15:01

권위주의 시대의 도래?

극단적인 경우 대한민국에 어쩌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전체주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상황을 보면 여건이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있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다. 

1. 남북갈등이 심화하여 여론이 한 방향으로 경직되기 쉽다. 
적절히 증오와 분노를 부추겨주면 그 다음은 스스로 동력을 얻어 돌아가게 될 것이다.

2. 현 대통령과 정권이 레임덕을 타개할 계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현 정권은 전 정권에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햇볕정책을 3년간 철저하게 중단하고 부정하면서 대북강경고립정책을 구사해 온 현 정권이 막상 일이 터지자 햇볕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는 데서 현 정권의 기본마음가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북갈등심화 덕분에 현 정권은 자신과 견해를 같이 하지 않는 비판세력을 북한과 동일시하여 통제하는 전략을 보다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애꿎은 희생양을 만들어 악마화함으로써 자기칭의를 도모하기 위해 온라인글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권비판세력에 대한 사찰과 검열이 의로운 분노의 이름으로 일상화될 수 있다. 민간인사찰과 대포폰의 존재 따위는 그 나쁜 조짐으로 보인다.

3. 언론방송장악이 사실상 거의 이루어진 상태다. 
언론방송권력을 견제할 수단이 현재로선 실질적으로 없어 보인다. 정권과의 이해관계호응에 따라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도구역을 자임한다면 기득권층으로선 여론을 순식간에 조종통제할 수 있게 된다. 정권과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서 내보내면서, 이에 동조하지 않는 시민이나 집단은 색깔론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제압할 것이다. 
이미 이것은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 해왔고, 당대표가 공식적으로 '사이버전사'를 양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알바들이 내뱉는 몰상식한 극언이 정권의 정책이나 행동에 실제로 반영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정도가 되면 실질적으로 전체주의와 별 다를 것 없는 권위주의 사회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4. 야당과 시민사회가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해졌다. 
김대중, 노무현 이후 실질적으로 민주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못했다. 야당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서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민의를 대변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5. 군검경이 현 정권과 긴밀히 호응하고 있다. 
군은 노무현 시절 제2 롯데월드 설립허가를 안보를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하다가 현 정권 들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검찰은 자신들에게 자율권을 준 노무현 대통령을 주변사람들을 꼬투리잡아 죽였지만, 동영상 증거까지 남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까지 나서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했다. 
경찰은 현 수장부터가 철저히 군사독재시대의 악습이 발상과 처신에 몸에 배어 출세를 거듭했다.
군검경은 현 정권의 이해관계에 적극부응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몇 해전 저명한 찬송시인 송명희님이 '표'라는 소설에서 조만간 대한민국에 베리칩을 표로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대환란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666표를 두려워하고, 적그리스도가 교회와 세상을 커다란 고통에 빠뜨릴 대환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휴거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근본주의 내지 세대주의 종말론 프레임에서 나온 얘기다. 
조금만 찾아 보면 이와 비슷한 얘기들이 꽤 많이 나돌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 오워의 전쟁예언을 얘기하는 이들도 이 프레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자는 그들의 최선의 의도는 존중하지만, 세대주의 종말론은 애시당초 성경적으로 합당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송명희 시인이 그리는 것과 같은 시나리오에 딱 한 가지 공감하는 부분은 이대로 가면 전체주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아직 그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일말의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한 때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란다.
그러나 만일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이 온다면 체재의 속성상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정당하고 의롭다고 굳게 믿으면서 모든 악행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이 대목에 대해 얼마나 깨어 있는가? 이 점에서 다시금 마음이 갑갑해진다. 
바르멘신학선언을 작성해 독일교회의 대히틀러투쟁을 고취했던 바르트나 히틀러암살계획에 가담했던 본회퍼를 신학교나 설교에서는 곧잘 들먹이지만, 막상 교회현장에서는 목회자나 대중 모두 워낙 몰역사적인 개인신앙에 절어 있어서 역사참여를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공이데올로기에 열광하면서 기득권의 행태에 철저히 호응하고 있으니 이 모순과 부조리를 어찌하면 좋을꼬... 하나님께서 도움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덧붙임]
- 미국의 유니테리언 목사이자 예수 세미나의 펠로우인 데이빗슨 뢰어는 미국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정치적 근본주의에 호응하여 새로운 파시즘을 초래할 것을 내다보며 우려와 비판을 표명한 바 있다. 뢰어의 유니테리언주의나 예수세미나식 역사적 예수 연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정치신학적 문제의식은 동감이다. 한국 상황은 미국과 딱 판박이다. 
2010. 11. 27. 01:16

한반도전쟁예언과 한반도의 운명

북한에 원조를 주거나 대화와 협상을 하는 것이 이적행위라고 굳게 믿고, 북한의 붕괴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적지 않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북한을 붕괴시키면 한반도 북부가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느냐고 꼭 물어본다.

적어도 지난 몇해동안은 북한붕괴론의 귀결을 분명히 깨닫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었다. 북한이 미워서 붕괴를 외치긴 하는데 막상 그 다음을 생각하니 그곳이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캥겼던 걸게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서 차라리 꼴보기 싫은 북한을 중국에 던져주자는 답변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참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현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시대의 남북관계에 대한 공헌을 계승, 발전시키기 보다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이루는 사람들의 뜻대로 송두리째 부정하고 북한을 백안시하는 강경노선을 택했다. 그 결과 이전까지 북한에 대해 대한민국이 10년 동안 차근차근 발전시켜왔던 경제적 영향력과 국제적 주도권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모두 잃어 버렸다. 작금의 연평도 사태는 현 정권의 강경노선이 시작된 때부터,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급속도로 잃어 버리면서부터 이미 어떤 식으로든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대체 어떻게 할 건가? 사실 우리 쪽이 들고 있는 패가 별로 없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유라시아철도건설 모두 물 건너가 버렸고, 남북정상회담은 10년간 일군 성과를 일언지하에 가볍게 부정해 버린 터라 더 말할 것도 없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제 대한민국은 또다시 주변열강들의 파워게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한반도 북부의 지배권 문제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의 지분은 거의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바로 옆의 그림이 미 국방부가 구상한 북한붕괴시 분할시나리오라고 한다. 중국이 그린 지도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혈맹이라는 미국이 그린 지도라는데, 대한민국의 지분이 없고 중국의 지분이 가장 크다. 

대한민국 사회가 증오심과 분노를 차분히 다스리면서 남북문제를 대처해나갔다면 미 국방부든 중국 지도부든 감히 이런 지도를 그리고 있지 못하지 않았을까? 증오심과 분노에 눈이 멀어 북한을 백안시한 결과가 이런 수모와 어두운 전망이다.

특별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간곡히 묻는다. 북한이 붕괴하기를 피를 토하듯 기도하는 목사 장로 집사 청년들이여, 당신들 제정신인가? 이 지도를 똑똑히 보라! 이것이 당신들이 바라는 지도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보여주신 비전인가? 당신들은 북한땅을 수복하려는 꿈이 없는가? 

언젠가 한반도에 대한 예언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밝혔다시피, 그 예언 자체는 하등 무서울 것이 없다. 진정 무서운 것은 이 땅의 불의와 더러움이다. 이렇게 갈갈이 찢겨져 나간 한반도를 보면서도 자기들의 증오와 분노를 종교와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하려 드는 사람들의 모질고 독한 완악함이 진정 무섭다. 그 독한 죄성으로 점철된 이 땅의 불의와 부조리가 진정 두렵다.

성경의 예언은 운명의 비밀지도 따위가 아니다. 예언자 요나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했다. 니느웨 도성이 이 예언을 듣고 지도자와 백성이 마음을 낮춰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자 니느웨에 대한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하나님의 영으로 그 어느 누가 예언하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운명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로 초대하는 부름이다. 

이땅의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북한이 붕괴하길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한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가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인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라!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의 완고함을 두려워하고 돌이키라!

원수 북한이 붕괴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라! 
하나님은 원수의 불행을 기뻐하는 자를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북한에 인권과 자유와 경제적 풍요가 없는 것에 대한민국을 견주며 자만하지 말라! 
저들은 한없이 연약하고 가련한 우리의 동포다.

오히려 대한민국에 불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을 애통하고 이 땅에 공평과 정의가 메마른 데 대해 주리고 목말라 하나님 앞에 신음하라! 

이땅에서 공평과 정의가 하수처럼 가득 흘러 저 북녘땅까지 적실 때 이 땅에 평화통일이 임할 것이다. 

[덧붙임]
*1.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실제로 미국방부 CSIS의 한반도분과가 이 문제를 토의하는 데 사용한 문서가 올라와 있지만 아쉽게도 문제의 지도는 CSIS에서 아직 찾지 못했다. 
대신 북한붕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최근 글만 찾을 수 있었다. 이 글이 교묘하게 결정적인 논점과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피하면서 쓰여졌음에도, 이명박정권이 미국방성과 북한붕괴문제에 관해 대화를 진행해왔음을 내비쳤다.("...Bilateral planning has been stepped up with South Korea under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문제의 지도를 CSIS가 작성했다면 현 정권에서도 이를 모를 리가 없고, 심지어 그 지도의 경계선을 긋는데 동참했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문제의 지도가 국내언론에 보도됐을 때 대한민국 정부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역사상 모든 대한민국 정부에서 한반도 북부 국토수복은 당연한 권리요 책무였던 걸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혹은 문제의 지도가 CSIS가 작성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 작성해서 여론의 간을 보는 것이었다면? 참으로 착잡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2. 조금 다른 각도에서 미국과 한국정부가 지난 3년간 북한붕괴를 논의해왔다는 폭로가 가디언지에서 나왔다. 국내보도를 보면 여기엔 중국에 경제적 편의를 제공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되어 있다. 북한붕괴든 북한분할이든 중국에 뭔가를 팔아넘기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 황당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왜 우리 영토를 당사자끼리 얘기하지 못하고 주변 열강을 끌어들여야 한단 말인가. 박선원 미국 브루킹즈연구소 초빙연구원에 따르면, 문제의 '경제적 편의'란 영토를 떼어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한심한 것들...
2010. 10. 3. 17:10

한반도전쟁예언의 사각지대

최근 데이비드 오워 박사라는 케냐의 예언가가 한국(교회)의 죄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오워 박사의 홍보영상을 보면 티벳과 칠레와 미국서부와 아이티 등의 지진을 예언한 예언가라고 되어 있다. 그런 예언가가 한반도에 전쟁을 예언했다니 평신도들과 비그리스도인들사이에서조차 입소문을 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예언이 나왔다면 그것이 주께로부터 말미암았는지 주의깊게 시험하여 보고, 주께로부터 말미암았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합당한 방향으로 돌이키면 될 일이다.

1. 주께로부터 말미암은 예언인가?

오워 박사의 불분명한 신학적 배경이나 이현령비현령식 예언행태에 대한 이의제기가 많이 되고 있다. 이 의혹들을 간추리면 이렇다.

1) 오워 박사가 그리스도인이 된지 얼마 안 되는 '초심자'이며, 그리스도인이 된 뒤에도 두 여인과 동거했던 전력이 있다.
2) 오워박사의 부르심이야기에 성경에 낯선 the Ark of the New Covenant of The Lord in God's Throneroom이나 "천국 문 앞에 떠 있는 두 개의 결혼반지"와 같은 비성경적인 표현이 나온다.
3) 오워 박사의 집회에서 '신사도운동' 계열에서 관찰되는 '쓰러짐' 현상이 나타난다. 오워 박사의 동영상을 처음 퍼뜨린 카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도 신사도운동 계통이고, 특히 이곳에는 92년 종말론파동 때 다미선교회 미국지부를 맡고 있던 장요셉 목사가 참여하고 있다. 오워 박사의 동영상 다수에서 통역으로 나오는 사랑과 진리 교회 벤자민 오 목사도 신사도운동가다. 신사도운동은 이미 교계에서 광범위하게 도입 내지 참여금지 판단이 내려진 기피단체다.

이 의혹들은 어찌 보면 근본주의자들의 지나친 정죄로 보이기도 한다.

- 두 여인과 동거한 것이 잘한 일은 아니지만 케냐 같은 아프리카나라에 일부다처제가 남아있을 수 있다.
- 쓰러짐 현상은 부흥회를 아주 심하게 하다 보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전면에 내세운다는 게 치우치고 위험한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때때로 성령은 주류교회에서 추방된 공동체 가운데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

다만, 그의 부르심이야기에서 비성경적인 표현이 나오는 점은 걸린다. 이것은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미 펄시 콜레의 천국간증 때 비성경적인 표현이 그의 정체가 탄로나는 데 단서가 된 바 있기 때문이다. 펄시 콜레 역시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 얘기한 바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었고, 천국간증도 앞뒤가 맞지 않는 한낱 사기에 지나지 않았다.(*1)

사실 오워 박사의 예언은 주께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식으로 잘라 말하지 않으면 후련하고 시원하지 않다. 하지만 후련하고 시원한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정확한 답을 찾아가는 쪽이 낫다. 누군가를 사이비이단이라고 판단하는 일은 확고부동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제기된 의혹들 가운데 위험천만한 대목도 있지만, 확고부동한 증거랄만한 신학적 오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관련자료를 좀더 충분히 수집해서 찬찬히 살펴 본 뒤에야 이 부분을 확실히 할 수 있다. 해서 판단을 유보해 둔다. 일단 정확하다고 확신되는 판단이 서면 이 부분의 서술은 보다 간명해질  것이다.

2. 예언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매김이다.

사실 오워 박사가 말하는 한국교회의 죄 자체는 누구나 공감할 만큼 상식적이고 원론적이다. 번영과 성공의 신학, 음란의 죄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로 돌이킬까?

상대적으로 음란의 죄는 돌이킬 방향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번영과 성공의 신학은 어디로 어떻게 돌이켜야 할지, 돌이킬 수나 있을지, 문제가 참 간단치 않다.

한국교회의 성공신학은 한 마디로 힘의 숭배다. 번영신학, 성공신학의 죄를 회개하자고 말하는 그 자신들이 힘의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다. 한국교회가 앙모해온 미국교회 복음주의와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구체적으로 한국교회의 주류는 어김없이 정의를 강탈한 기득권과 결탁하여 안녕을 도모한 야합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교회는 기득권과 결탁한 나머지 그들의 이데올로기, 특히 반공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다. 6.25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 가운데 하나인 한국교회가 북한에 대해 강한 트라우마를 갖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한국교회가 반석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반공이데올로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반공이데올로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진배 없이 내면화 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기득권를 비판할 수 없다. 오히려 기득권을 비판하면 빨갱이라는 의혹의 따가운 눈길부터 주기 바쁘다. 나아가 기득권의 원의에 적극 봉사하기까지 한다. 현 정권을 지극정성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뉴라이트는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자기 반석으로 삼은 한국교회는 기득권에 밀착하여 번영과 성공을 누리느라 예언자적인 비판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 이 땅의 우파 기득권과 하나님의 뜻을 간단히 동일시하고, 소위 좌파를 사탄의 무리, 빨갱이로 즐겨 단죄하며, 북한에 대한 증오와 공포에 노예적으로 사로잡혀 있다.

바로 이런 수구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기득권층은 북한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안보장사를 해왔고, 한국교회는 이 비루한 안보장사에 이용당해 왔다. 그렇기에 불쌍하고 딱한 북한정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하기 보다, 저 사악한 북한 정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폭싹 망하기를 피를 토하듯 기도한다. 이렇게 하면 기득권층과 기성세대에게 성공이라는 일정한 보상을 받을 것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힘을 숭배하는 성공신학을 쉽게 버릴 수 없다.

구약예언자들은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강력한 저항과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의 비판은 바로 당대에 벌어지고 있었던 힘의 숭배라는 성공신학에 대한 비판이었다. 검은 것을 희다하고, 흰 것을 검다 하며, 저울추를 속이고, 약자의 판결을 굽게 하고, 의인의 의를 거짓으로 강탈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평안이 성직자들의 축복으로 계속될 것으로 믿어 의심지 않는 시대의 불의와 신앙의 태만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구약예언자들은 그들 사회에 가득 퍼져 있는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그들의 힘을 숭배하는 바알신앙을 우상숭배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 한국땅의 바알신앙은 다름아닌 반공이데올로기다. 반공이데올로기가 교회를 망치고 있다. 한국교회에 올바른 역사의식을 추구할 힘마저 빼앗아 버리고 있다. 반공이데올로기를 비판할 때 이 땅의 교회를 오염시켜온 수많은 이세벨들이 외칠 것이다. "저 빨갱이 사탄의 무리를 잡아 죽여라!"

교회가 반공이데올로기에 안주해 있는 한 한반도에 평화통일은 멀고 전쟁과 폐허는 가까울 것이다.

* 2010년 9월 5,7일경 다른 블로그계정에 썼다가 옮김.

[덧붙임]
1. 일례로, 펄시 콜레가 솔로몬왕에 대해 책과 설교테이프에서 한 말은 서로 상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