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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12. 13:42
서구교회의 쇠퇴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부흥
2011. 3. 12. 13:42 in 믿음의 지평/개혁교회와 공교회성
근본주의 교회는 흔히 숫적 부흥을 자랑하곤 한다.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대외적으로 '좋은 열매'라고 내세우는 가장 자신만만한 미덕이다. 물론 가장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라는 자부심도 그들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좋은 열매'일 것이다. '가장 성경적이고 복음적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얘기다.
과연 이런 것들이 좋은 열매일까?
1. 굳이 머릿수를 논하고 싶다면 자유주의 신학의 대변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목회한 삼위일체 교회에도 교회에 발길을 끊었던 신자들이 돌아와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해두고 싶다. 그들이 진짜 기독교인이 아닐 것이라는 식의 변명을 하려면 근본주의자들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왜 슐라이어마허에게는 '꿩잡는 게 매'라는 근본주의자들의 실천강령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가? (슐라이어마허라는 기독교사상사의 거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존경심은 젖혀 놓고서라도 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논점이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이 근본으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성경에서 열매에 관한 말씀이 과연 숫적 팽창을 가리킨 경우가 있는지 되짚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예수님도 바울도 '열매'는 믿음과 삶의 열매를 말씀하셨지 머릿수가 몇인가를 두고 '좋은 열매'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게 마련"(누가복음 17:37)이라고 하셨다.
근본주의자들이 숫적 '부흥'에 관해 스스로 확신하고 퍼뜨리는 대표적인 어젠다가 바로 자유주의 교회는 숫적으로 쇠퇴한다는 얘기다. 서구교회가 쇠퇴한 원인이 바로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서구교회의 쇠퇴는 근본주의 내지 근본주의를 방불하는 분파주의에서 비롯되었다.
-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네덜란드라는 작고 강력한 나라를 일으킨 정신적 토대 노릇을 한 영광스러운 교회였다. 20세기초만 해도 개신교회의 교세는 가톨릭을 압도했고, 50-70년대까지만 해도 우세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가 가톨릭의 절반에 못 미친다. 왜 그럴까? 네덜란드 교회가 자유주의에 물들어서? 베르까우어 같은 지도적 신학자가 사악한 '자유주의의 괴수' 칼 바르트를 추종하는 바르티안이어서? 천만에! 네덜란드가톨릭도 '자유주의신학'에 물들어 있지만 교세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자유주의신학 자체가 교세감소의 원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개신교의 쇠퇴는 오히려 개혁교회가 '보수적 신앙' 때문에 이전투구하고 분열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내 교단이 낫니 네 교단이 낫니 도토리키재기를 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모두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 이전투구와 교회분열을 일으킨 장본인은 다름 아니라 주로 '보수적으로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었다.
[표 설명] 첫번째 짙은 파란색은 무종교, 연두색은 카톨릭, 빨간색은 개혁교회, 노란색은 개혁교단, 보라색은 화란개신교단, 옅은 파란색은 기타 종교를 나타낸다. 흥미롭게도 가톨릭 근본주의자들이 '자유주의'가 득세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인 1970년대 초에 교세가 약간 늘어났다가 90년대에는 다시 대폭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으로 집필된 네덜란드주교회의 새교리서(1966)를 교황청이 검열한 '화란교리서사건' 이후 진행된 교회의 보수화, 경직화 시기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 영국교회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공회든 개혁교회든 할 것 없이 오늘날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소위 복음주의 신학의 본산이었던 영광스러운 영국교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존 로빈슨 주교가 '신에게 솔직히'를 외쳐서? 존 힉 목사가 신중심적 종교다원주의를 퍼뜨려서? 소위 자유주의자들 때문에? 천만에! 비록 세속주의의 득세와 더불어 영국교회가 쇠퇴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60년대 이전만 해도 영국교회는 아직 건재했다. 영국교회의 몰락은 다름아닌 복음주의 진영의 자중지란에서 촉발되었다. 복음주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거룩한 분리주의를 주창하고 복음주의 진영에서 떨어져나간 바람에 복음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었다. 당장은 분리주의자들이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복음의 텃밭으로서의 한 사회 속에서 복음의 신뢰성 자체를 의문시하게 만든다.
- 미국교회? 오늘날 미국교회 역시 서서히 영국교회 짝 나고 있다는 걸 누가 부인하겠는가? 교회건물이 술집이 되고 모슬렘사원이 되는 현상이 미국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왜 미국교회가 저 지경이 되고 있을까? 자유주의의 누룩 때문에? 그 별로 미덥지도 못한 축자영감설과 창조과학과 베리칩 이론을 신봉하지 않아서? 혹은 사악한 프리메이슨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저명하고 신실한 목사 수가 부족해서?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선명성 경쟁에 뛰어드는 데 열심이 부족해서? '한줌도 안 되는' 자유주의자들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회중 사이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미국교회가 기울고 있지 않은가?
- 결국 서구교회 쇠퇴의 가장 깊은 뿌리는 종교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지엽말단의 명분싸움으로 갈갈이 찢어졌던 데서 비롯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회의주의가 서구사회를 휩쓸게 된 배경이 바로 교파분열이었다는 교회사가 후스토 곤잘레스의 지적이 합당하지 않은가. 서구세계가 세속주의, 회의주의에 먹힌 까닭은 교회가 갈라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어떤가? 한국교회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시점은 근본주의의 한 형태인 세대주의의 시한부종말론이 터졌던 90년대초였다. 종교다원주의든, 칼 바르트든 그들이 말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근본주의가 한국교회에 대한 한국사회의 혐오감을 자라나게 했던 장본인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근본주의 진영에서는 최근 몇 년간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절에 땅밟기를 하고, 불 지르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장로대통령을 세우겠다면서 기득권자들을 감싸고 도는 희한한 시민운동을 하고, 대통령을 무릎꿀리고, 자기 이익관계에 반하는 사안에 대해선 불 일듯 일어나 총궐기를 하고 있다. 왜 이런 신실하고 영웅적인 신앙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고 있을까? 왜 사회적 지탄에 날마다 치명상을 입고 있을까? "이게 다 자유주의 때문"인가? 도대체 이번엔 애꿎은 누굴 희생양으로 지목하려는가? 자유주의 핑계 대기 어려우면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한복음15:17-19, 요한일서3:13)는 성경말씀을 갖다 붙여 영광스러운 순교자로 만드는 둔갑신공을 발휘하는 이들이 꼭 있다. 언제부터 둔갑신공의 마술적 신앙과 순교자 콤플렉스가 참 신앙이 되었단 말인가?
최근 한겨레21에 "대통령보다 세고 헌법보다 무서운 목사님"이라는 기사가 떴다. 세상 언론에서조차 주목할 만큼 근본주의 진영의 드라이브는 강력하고 인상적이다. 이 기사는 근본주의 기독교가 전성시대를 맞이했는데 거꾸로 한국교회는 역풍을 맞아 기울게 되리라는 것이 요지다. 근본주의 드라이브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한국교회는 기운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 아닌가?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염치를 불안과 증오의 음모론과 맞바꾼 근본주의 드라이브가 한국교회를 살린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2. 주님과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은 "두려움을 내어쫓는 사랑"(요한일서4:18)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계시된 용서와 화해의 복음, 공평과 정의의 복음이다. 보혈의 은혜를 믿는다면서 용서와 화해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얘기다. 칭의의 복음을 믿는다면서 기득권자들을 싸고 도는 부조리와 불의를 정당화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다. 이것과 저것은 서로 끊을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연 근본주의자들은 이 사도적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가? 지금껏 살면서 근본주의자들이 복음의 정신인 조건없는 화해와 포용(Miroslav Volf)을 부르짖는 것을 도무지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의 근본주의자들, 특히 소위 반공목사들은 상대방이 무릎꿇고 빌지 않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극히 세속적인 원리를 성경과 참신앙의 이름으로 둔갑시킨다. (석기현 목사의 "빨갱이 청년들에게 고함"이라는 설교를 들어보라!) 이러면서도 자기 아들을 살해한 공산군을 자기 양아들 삼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신앙의 위인으로 떠받드니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지 않은가?
이런 근본주의가 한국교회에서 공감을 얻고 세력을 얻는 한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암적인 존재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한국교회의 사도성과 공교회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1)
[덧붙임]
*1: 최덕성은 2013년 6월 24일 부산 브니엘 신학교에서 열린 WCC 찬반토론회에서 이 글에서 지적한 근본주의의 주장을 또다시 그대로 되풀이했다. 재차 강조해두거니와, 바로 그런 자기중심적이고 아전인수적인 태도 때문에 한국교회가 급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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