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8. 09:09

최근 개신교 교세와 근본주의의 향배 (개정판)

각 교단 홈페이지와 교계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를 종합해 보면 2012년 현재 시점에서 우리나라 주요 개신교단들이 보유한 신자수는 다음과 같다.  물론 각 교단들이나 교계언론을 통해 알려진 아래의 신자수는 보유한 교적부의 신자수를 단순집계한 것으로 교인이동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계청이 발표한 개신교인수를 훨씬 웃돈다. 실제 숫자는 절반 정도 에누리해서 알아듣는 편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정도 의미는 있을 것으로 본다.

1. 예장합동 (295만명)
2. 예장통합 (285만명)
3. 감리교회 (153만명)
4. 하나님의 성회 (120만명?)
5. 침례교 (100만명)
6. 예장백석 (87만명)
7. 기독교 성결교 (56만명)
8. 예장고신 (42만명)
9. 기독교장로회 (33만명) 
10. 예수교 성결교 (28만명?)
11. 예장대신 (23만명)
12. 예장합신 (12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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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34만명

1. 통계상 추정치에 관하여

이 가운데 최근까지 교단통합선언 이후에도 교단분열이 진행되어 온 하나님의 성회 쪽 교세는 언론에 발표된 추정치인데, 일단 하나님의 성회 계통의 3개 교단들의 총 신자수가 2000년대 이전에 침례교를 웃돌기 시작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나님의 성회 계통 교단들은 여전히 교단통합 협상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하나의 교단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단은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대표하는 기하성(=대한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의 신자수만 쳤지만, 교단통합이 성사될 경우 신자수는 이보다 좀더 많게 되어 감리교의 그것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예수교 성결교회도 정확한 교세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NCC 가입 문제로 분열할 당시 기성 쪽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교세를 보유하고 있었고, 기성, 예성, 나사렛 성결교 세 교단이 합하여 96만명 정도라는 2005년도 기사가 나와 있기 때문에 기성측의 최소한 절반에 해당하는 교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밖에 신도수 6만명의 성공회1만명 내외의 루터교, 구세군, 복음교회 등은 우리 사회에서 인지도가 비교적 높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개신교의 지형을 바꿀 만큼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군소교단들이다. 이밖에 예장합동계열에서 갈라져 나온 무수한 군소교단들이 있는데, 정확한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위에 열거한 상위 12위 안의 중소교단 하나 규모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 주요 장로교단들에 대한 분석

한국개신교 보유신자수 상위 12개 교단 가운데 7개 교단은 장로교회의 교단들이다. 장로교 교단들의 신자수 총계는 777만명으로, 한국개신교 총수의 약 63%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소위 보수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들은 합동, 백석, 고신, 대신, 합신의 5개 교단으로, 장로교회 특유의 소위 '신학적 근본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이들의 신자수는 459만명이다. 장로교회 가운데 비교적 개방적인 개혁주의 노선에 서 있는 예장통합(285만명)과 기장(33만명)에 견주면 59:41 정도 비율이고, 상위 주요교단 신자수의 총합 1234만 가운데 1/3을 조금 넘는 수치(37%)이다.

소위 보수개혁주의 장로교 교단들은 주로 근본주의 특유의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해왔기 때문에 교계에서나 인터넷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큰 편이다. 이들의 신학노선에서 '사탄의 궤계'로, 증오와 분노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있는 칼 바르트나 관상기도에 관해 인터넷에서 얼마나 네거티브한 선동들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지 상기해 보면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큰지 실감할 수 있다.

단일교단으로서 최대교단은 예장합동측이 2000년 전후부터 합동계통 중소교단들과 교단통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예장통합을 제치고 최대단일교단으로 발돋움했다. 

물론 통합측은 최근 300만 신자운동을 벌여 자체집계 결과 목표를 달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통합측의 교세성장률은 줄곧 합동측을 앞서왔기 때문에 통합측 신자수가 합동측 신자수를 넘어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장합동측이 최대단일교단으로 발돋움한 배경의 핵심은 개별교단의 교세성장률을 넘어서는 몸집불리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데 있다. 즉 몸집불리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당한 교세를 갖춘 다른 합동계열 교단들이나 보수개혁주의 노선 교단들이 서로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교단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들 보수개혁주의노선의 5개 장로교단들은 - 당장은 현실적 장벽이 높겠지만 - 적당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교단통합을 이루어 최대 459만명 규모의 거대교단을 이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단통합논의는 무엇보다도 백석과 대신 교단 사이에서 활발하다. 백석 쪽에서 대신과의 교단통합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신 쪽에서 - 특히 백석의 여성안수안 통과를 두고 - 상당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회원교회 70% 정도가 이미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두 교단이 합쳐진다면 신자수 100만명을 헤아리는 또 하나의 대형교단이 생겨나게 된다.

백석측은 예장통합과는 2009년에 교단통합 얘기가 나왔었는데 현재는 별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백석 측이 예장통합과 가진 신학적 공통분모는 여성목사안수가 시행되고 있다는 점 정도를 들 수 있겠지만, 배타적인 보수개혁주의신학을 부르짖어 왔다는 점, WCC가입 문제에 대해 음모론을 동원하면서 반대하는 그룹이 존재한다는 점 등은 극복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어쨌든, 백석과 예장통합의 교단통합시도는 보수장로교 5개 교단의 결속력 내지 동질성이 반드시 공고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백석과 대신이 예장통합과 더불어 합동 주도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탈퇴하고 한교연(=한국교회연합)에 가입한 상황이 주목해 볼 만하다. 두말할 것 없이 합동측의 무리한 권력욕은 그들 자신에게 덫이 되고 있다. 스스로 근본주의 장로교단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깎아먹을 뿐 아니라 그들의 지지기반이자 존재기반이 되는 보수개혁주의 교단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2.1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에 대한 분석과 전망

두 장로교단은 국내 개신교의 판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예장합동의 리더쉽은 결국 보수개혁주의 노선 장로교단들에서 나오며, 신자수 확보와 더불어 이들을 대표할 수 있을 만한 보수적 선명성 확보가 이루어질 때 이들의 맏형이 될 수 있다. 

예장합동이 여성안수를 시행하고 있는 예장백석에게서 최소한 전략적 동반적 수준에서라도 힘을 얻으려면 예장합동에서도 여성안수문제 사안에서 비슷한 결단이 있어야겠지만, 이것은 예장합동이 보수적 선명성 확보를 통해 보수개혁주의교단들의 맏형으로 자리매김되기를 추구해 온 전략에 변경이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보수적 선명성 경쟁을 통해 맏형지위를 확보한 예장합동의 목소리는 이들 교단들의 목소리와 대동소이하다고 보아도 크게 그르침이 없다. 이것은 예장합동의 강점이 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소위 보수개혁주의 노선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예장합동의 리더쉽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는지가 늘 물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예장합동의 전략은 보수적 선명성을 강화하면서 그 장점에 설득되고 감화되는 신자들과 타교단들이 늘어나도록 하는데 있다. 보수적 선명성 강화는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의 미국 근본주의적 재현과 헤르만 바빙크로 대변되는 화란 신칼뱅주의의 절충과 종합이라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데, 미국 근본주의와 화란 신칼뱅주의 모두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을 정답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고 문제적이다. 그러나 보수적 선명성 강화는 분단상황의 불안정성이라는 선교적 배경에서 그동안 매우 잘 먹혀 들었던 전략이기 때문에 예장합동의 전략은 비록 폐쇄적일지언정 상당히 잘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예장통합의 리더쉽은 전통적으로 개신교 교단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각 교단에 두루 통하는 신학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예장통합은 보수개혁주의 노선 장로교단들만이 아니라 타교단들에도 일정한 공명을 얻을 수 있는 신학적 중도노선에 서 있다. 따라서 예장통합의 전략은 보수적 선명성 강화가 아니라 칼뱅, 슐라이어마허, 바르트, 몰트만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신학계보를 계승하여 개신교단들 전체에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방적 소통능력, 또는 "중심에 서는"(김이태) 균형감각에 있다. 예장통합이 지향하는 리더쉽은 바람직한 방향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단상황의 불안정성이라는 선교적 배경에서 과연 어느 정도 먹혀들 수 있을까, 혹시 어중간한 회색지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3. 개신교 전체에 대한 분석과 전망

소위 정통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 5개 교단은 칼 바르트 이후 현대신학과 성서비평학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근본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와 비슷하게 침례교(100만명)과 예수교 성결교(28만명)도 근본주의 노선에 서 있으나, 이들은 칼 바르트 이후 현대신학과 성서비평학에 대해 칼뱅주의 계통 근본주의에 견주면 배타성과 폐쇄성이 상대적으로 강하지는 않아서 현대신학과 성서비평학에 대해 상당한 수용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근본주의 전통을 고수하는 교단들의 교세를 합하면 587만명으로서, 한국교회 전체 교세의 절반(47.5%)에 조금 못 미치는 인원에 여기에 속해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다시피 비장로교 근본주의 교단들의 신학적 입지는 어느 정도 유동적이다. 근본주의 장로교단들과 이들의 유대관계는 '개혁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침례교에는 개혁주의 유산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며, 예성측에는 그만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칼뱅주의 계통의 예장통합(285만명)과 기독교 장로회(33만명), 웨슬리주의 계통의 기독교감리회(153만명), 하나님의 성회(120만명), 기독교 성결교회(56만명), 이상 5개 개신교단은 각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근본주의를 탈피하여, 근본주의 교단들이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등으로 낙인찍는 신학노선에 서 있다. 즉, 칼 바르트 이후 현대신학과 성서비평학에 대해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교세는 총 647만명으로서, 한국교회 전체 교세의 52.4%에 해당된다.

여기서 기감의 입지는 통합의 그것에 비해 한결 유리해 보인다. 예장통합은 합동측과 달리 신학적으로 보수개혁주의 노선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 근본주의 장로교단들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장로교회의 맏형노릇을 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반면, 기감쪽은 예장통합에 비해 절반 수준에 가까운 규모이지만 350만 웨슬리계통교단들의 맏형이라는 위상이 있다. 비근본주의 장로교단인 예장통합과 기장의 규모가 318만명이기 때문에, 예성을 제외한 비근본주의 웨슬리계통교단들만으로도 329만명이 되어 비근본주의 장로교단들에 근소한 교세의 우위에 있게 되며, 예성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면 350만명 규모의 효과를 보게 된다.

여기서 기독교감리회가 갖는 독특한 위상이 드러난다. 근본주의의 영향력이 쇠퇴할수록 비장로교회 교단들 가운데서 차지하는 감리교회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볼 수 있다. 반면, 예장통합의 리더쉽은 근본주의 장로교단들을 얼마나 설득하느냐를 중요과제 가운데 하나로 갖고 있다. 이것은 칼 바르트가 이미 수행한 바와 같이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공감적이고도 비판적인 신학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진영 양쪽에 발을 걸쳐놓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최근 발언과 행보가 보수와 진보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오중복음과 삼박자축복"론에 대한 예장통합의 이단성 비판 이후 기하성측은 부단히 신학의 현대화를 추구해 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세대학교 신학자들의 연구성과를 보면 근본주의를 탈피해 있다고 보아도 크게 그르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하성을 비근본주의 교단으로 치는 것은 여전히 상당히 망설이게 된다. 교단의 실권을 잡고 있는 조용기 목사와 그 주요측근들이 세대주의 종말론과 반공근본주의에 깊이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하성은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근본주의로 회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교단이다. 결국 오순절 계통 교단들은 근본주의와 비근본주의 사이에서 지형을 좌우할 수 있는 캐스팅보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내다 볼 수 있다.

4. 근본주의 이후 대체 프레임

현재 시점에서 보기엔 근본주의 프레임은 상당기간 영향력을 잃지 않을 것 같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입지조건과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에 안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희생양을 끊임없이 구하는 역기능적 정신구조의 종교화에 관한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근본주의보다 여기에 잘 들어맞는 사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장합동을 비롯한 근본주의 교단들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주의 프레임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역기능적 신앙유산이다. 근본주의 프레임의 역기능성이 근본주의 교단들이나 근본주의 지지자들에게도 그 심각성이 인지되고 대체 프레임을 모색하게 될 시점, 최소한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할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긴 어렵다. 그러나 근본주의가 한국교회를 규정하는 프레임으로서 힘을 잃게 될 경우 이것을 대체할 프레임이 분명 등장할 것이다.

지배적 프레임의 교체가 한국교회에서 근본주의가 보수개혁주의 형태로 나타난 데서 예컨대 복음주의, 보수적 웨슬리주의, 부흥주의 등과 같이 옷만 갈아입고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근본주의 프레임의 역기능적 신앙유산이 극복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앞으로 근본주의라는 지배적 프레임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에 대해서 반드시 재고가 필요하다.

1. 성서비평학의 정당성과 한계에 대한 올바른 평가
2. 칼 바르트 이후 현대신학의 공헌에 대한 전향적 이해
3. 반공근본주의 형태로 나타나는 정치-경제적 기득권층과의 밀착관계
4. 증오와 배타의 대상을 설정하여 그들을 비방함으로써 자기정당성을 확인하는 형태의 희생양 메커니즘  또는 역기능적 신앙
5. 세력결집, 성장일변도의 자본주의 종교성 극복

이상과 같은 특징을 모두 담지한 세계교회적 흐름으로는 다른 글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칼 바르트 신학이나 "후기자유주의"가 있다. 그러나 이들 사조는 자유주의 신학에 견주더라도 - 적어도 아직은 - 목회현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까닭은 (1) 바르트 신학이 너무 방대하고 깊은 논의들을 담고 있어서 바쁜 목회현장에 쫓기는 목회자들이 충분히 집중적으로 연구하기에 난점이 있고, (2) 바르트 신학의 강력한 영향 아래 성립된 후기자유주의 신학은 기존 교회의 계급적 구조에 맞지 않아서 메노나이트교단과 같은 소규모 교파에서 적극적으로 실험, 적용 가능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근본주의의 대체프레임은 한꺼번에 칼 바르트 신학이나 "후기자유주의"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두 가지 탈근본주의적 특징들을 전유, 통합한 프레임들이 나타나면서 한동안 경쟁과 실험을 통한 검증과정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선 진보적 복음주의가 경쟁과 검증에 유리한 신학적 자산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전망이 있어 보이지만 교단적 기반이 약하다. 웨슬리주의는 교단적 기반이 강하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쉽게 부각될 수 있을 듯 하지만, 웨슬리주의만으로는 근본주의와 충분한 차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진보적 복음주의와 웨슬리주의가 상호결합된 형태의 대체프레임이 한동안 한국교회의 신앙적 틀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전망해보게 된다.

물론 새로운 프레임이 적용되는 과정에서도 근본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근본주의의 대체프레임이 인간을 진리 안에서 자유케 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정체성을 두면서도 근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역기능적 신앙양태와 그 정당화로서의 종교이데올로기들을 극복하는 방향이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5. 추가사항
- 이 글의 분석은 신자수 또는 교세가 교단의 영향력에 대한 직접적인 바로미터라는 가정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물론 교단의 영향력 내지 감화력은 신자수나 교세로만 환원될 수는 없는 복합적인 것임이 간과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큰 흐름을 짚어보고 내다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의 용이성과 단순성을 위해 다른 복합적인 요인들을 일단 배제한 상태에서 분석을 해 보았다.
- 특히 신자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별공동체가 얼마나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전을 실험하여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추후 별도의 글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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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화된밤 2012.02.25 13:42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얼마나 한국 교회가 "근본주의"기독교에 절절하게(?) 물들어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관상기도나 바르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비판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최소한 바르트의 책들을 몇권 읽고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을까요? 최근 바르트의 "복음주의 신학 입문"이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이 노신학자가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가 느껴져서 정말 눈물이 나더군요. 하지만 이미 "도식화"된 신학을 잣대로 난도질을 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신학이 "정체되서 Fix"되는 순간 그 신학은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꼭 저도 천국 못갈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요. 하하하~ 좋은 신앙인이 먼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2011. 2. 18. 01:35

근본주의의 프리메이슨 음모론 (2)

3. 릭 워렌

빌리 그래함의 뒤를 이어 아마도 미국을 대표하는 목회자로서 위상을 지니게 될 차세대 복음주의 지도자 릭 워렌 목사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이 관심을 갖는 대목은 그가 불치의 질병을 무릅쓰고서도 탁월한 설교자로서 우뚝 섰다는 점이 아니다. "목적이 이끄는" 시리즈의 책 인세만 해도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였지만 10의 9조를 헌금하며, 어떤 대형교회 목사들과 달리 호화로운 생활을 거절하고, 교회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근본주의자들에게 그다지 흥미의 대상이 못 된다. 그들의 눈에는 릭 워렌의 탁월한 기독교적 실천조차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하기 위해 사탄의 선지자가 벌이는 쇼일 따름이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릭 워렌은 또다른 최악의 프리메이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릭 워렌이 프리메이슨이라고 근본주의자들이 공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다룬 빌리 그래함이나 한스 큉의 경우와 별 다름 없다. 자기들이 서로 제기한 의혹이 부풀려지고 굳어지면서 사실처럼 통하고,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니 어느새 사실로 둔갑해버린 얘기들이다. 프리메이슨(이라고 음모론자들이 굳게 믿는) 아무개와 가깝거나 만난 적이 있다, 관상기도를 퍼뜨린다, 따라서 친가톨릭적이다, 설교에 나타난 그의 교리가 맘에 안 든다, 프리메이슨(이라고 음모론자들이 굳게 믿는) 기관과 관련이 있다는 식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데도 굳이 릭 워렌의 사례를 살펴 보려는 까닭은 복음주의 계통에서 릭 워렌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와 대표성을 무시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릭 워렌이 음모론자들이 프리메이슨 산하기관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CFR의 실제 회원(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CFR이라고 하니까 무슨 비밀결사 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미국외교관계평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라는 미국의 유력한 민간국가전략연구소의 줄임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 귀에도 익숙한 헤리티지재단이나 브루킹스연구소와 같은 미국의 정책연구단체이다. 미국외교관계평의회는 브루킹스연구소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중도성향의 단체로서, 진보와 보수 정권 양쪽 내각의 인물 상당수가 이 단체와 연관을 맺고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문 위키백과 해당항목에 따르면 릭 워렌 목사는 2005-06년 미국외교관계평의회의 선출회원이었다. UN이나 다보스포럼 등에서 연설을 하고, PEACE플랜을 통해 화해와 빈곤퇴치, 교육 등을 확산하고자 해 온 그의 사회참여적 행보 가운데 일부이다.

그러면, 미외교관계평의회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얘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물론 이 단체가 미국정치외교계에 행사하는 대단한 영향력에서 음모의 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어림짐작이라면 세상에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비밀결사단체사람이어야 하리라는 점에서 터무니없다.

이런 말을 처음 한 사람이 누군가? 다름 아닌 미국극우정치조직인 존 버치 소사이어티와 그 수장인 래리 맥도날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영문판 위키백과의 해당항목 기술에 따르면 그들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와 더불어 1960년대 음모론자들의 영화나 책도 한몫한 게 틀림없다. 존 버치 소사이어티와 래리 맥도날드가 이들의 말에 낚였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극우단체가 이 주제를 하위문화 레벨이 아닌 정가라는 공적 영역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논의했다는 데 있다.) 우파세력이 미국의 기득권을 쥐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는 민간조직을 흠집내고자 반프리메이슨정서를 이용한 정치공세를 했다는 뜻이다. 사실관계가 아무 것도 나온 것이 없음에도, 미국정가에서 음모론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뜬 음모론자들이 기꺼이 받아 적어 퍼뜨렸고, 그 중에 기독교근본주의자들도 열성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베리칩 음모론에 이어 다시 한번 미국의 극우세력과 근본주의자들이 손과 발과 입을 맞추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4. 세계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프리메이슨 조직이라는 얘기는 워낙 많이 퍼져 있는데, 막상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했는가 살펴 보면 별로 나오는 게 없다. 하지만 역시 개신교 최대의 연합단체인만큼 세계교회협의회를 프리메이슨 음모론을 논하는 데 있어서 빠뜨릴 수 없다. 

세계교회협의회가 프리메이슨 조직이라는 얘기는 이를테면 존 콜먼의 '300 Committe'라는 음모론 책에 나온다. 이 책에서 세계교회협의회를 언급하는 해당단락(한글번역은 예컨대, →여기.)을 보면,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기술과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보다 단정하고 강변하는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이걸 보고 믿으라는 건가? 세계교회협의회가 태동한 역사적 배경과 과정을 모르는 사람만이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 만한 내용이라는 점만 말해 두겠다.

여기서 국내 유명목사님 아무개가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중이고, 따라서 프리메이슨이라는 식의 루머에 대해서도 간단히 덧붙여 둔다. (루머의 본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여기를 참조할 것.)

국내에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중인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이 있을 수 있다. 국내에도 성공회, 감리교, 기독교장로회, 예장통합, 구세군, 복음교회, 순복음교단 등이 정교회와 더불어 세계교회협의회에 가맹한 교단들이기 때문이다. 세계교회협의회가 프리메이슨 조직이라면 이 교단들도 프리메이슨 산하조직일까? 무슨 신통한 '영적 분별력' 따위를 들먹이기 전에 상식수준에서만이라도 이게 정말 그런 건지 헤아려 보라. 실로 밑도 끝도 없는 중상모략 아닌가?

게다가, 국내 유명 목사님들은 바쁜 목회활동 때문에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할 여력이 없으실 것이다. 하물며 세계교회협의회를 용공단체로 규정하고 가맹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예장합동 소속이신 길자연 목사 같은 분이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할 까닭은 전혀 없다. 국내 유명 목사님들도 프리메이슨으로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중이라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리는 장본인들이 이 정도로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았다!

국내외 근본주의자들이 프리메이슨 음모론을 만드는 방식은 이쯤하면 왠만큼 드러난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바탕으로 근본주의가 프리메이슨 음모론에 열광하는 까닭을 짚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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