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3. 06:05

한국교회와 사이비이단문제

기독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를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교회를 이루는 종교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으면서 기독교인인척 하거나, 오직 자신들의 (정당한 근거를 결여한) 주장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할 때 교회는 이들을 사이비 혹은 이단으로 분류하여 교회 안팎에 경각심을 촉구해 왔다.

문제는 교회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만한 뉴스거리를 빈번하게 제공하게 되면서 교회나 사이비이단이나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에 큰 차이가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교회가 나름 고군분투함에도 사람들에게 사이비이단문제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한낱 집안의 밥그릇싸움 정도로 비쳐질 정도가 됐다.

교회로서는 물론 억울한 점이 많다. 사이비이단자들의 폭력적인 집단행동과 교묘한 거짓말과 선동이 언론에 동정적으로 비쳐짐에 따라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스스로 드리워놓은 그림자에 '낚시질' 당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돈과 여자와 권력을 밝히고, 마술적 카리스마를 연출하면서 독재적이고 비인격적인 교회운영을 하고, 성경해석은 면밀한 연구검토와 기도 없이 엉터리로 끼워맞추는 자기 모습이 혹시 사이비이단이라는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춰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칼 융의 그림자 이론에 따르면 그림자는 자기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잠재의식 속으로 추방한 억압된 자신의 모습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신의 억압된 모습을 강력하게 규탄하면 할수록, 그림자에 반응하면 할수록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삼켜 버려 그토록 규탄했던 그림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는다.

칼 융의 분석은 한국교회의 사례에도 들어맞는다. 한국교회는 더이상 사이비이단을 배격하는 정도로는 결백하고 의로운 자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기엔 한국교회의 규모와 위상이 한국사회 속에서 너무나 크고 강력해져서 자기보다 약한 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괴롭힘으로써 제 살 길을 찾으려는 부덕한 자로 떠오를 뿐이다. 한국교회가 사이비이단문제에 집착할수록 그 프레임에 갇혀버려서 갈수록 사이비이단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가 사이비이단문제에 있어서 진리를 올바로 분별하는 것은 지나쳐선 안 될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비교대상이 사이비이단에 머물러 있어선 곤란하다. 사이비이단은 한국교회 자신의 죄된 모습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비교대상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신의 모든 죄악을 갖고 나아가 내려놓고 그의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총 앞에 서야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뒤따름으로써만 한국교회는 사이비이단문제라는 곤경에서 자신과 이웃을 구원받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