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3. 04:02

한국교회의 개발독재유산

한국전쟁 이후 한국개신교의 양적 팽창은 반공주의와 맞물려 있다.(*1)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한국개신교는 분단 이전에 북한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공산정권이 북한에 수립되면서 월남한 개신교인들은 북한공산당에 대해 누구보다도 원한과 증오를 품고 있는 반공주의자였다.  이들이 남한의 개신교 형태의 원형을 이루게 된다. 이 원형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과 전후복구과정을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확대재생산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남한사회에는 반공주의를 내세운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섰다.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의 지원이 필요했고, 자신들의 취약한 민주주의적 정통성을 보완해줄 반공주의의 전초기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낙점된 것이 바로 강력한 반공주의로 소문난 개신교였다. 군사독재정권은 개신교에 여러가지 강력한 지원을 퍼부어 주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소개한다.


- 군종목사제도: 한국개신교의 주도적 건의와 반공주의에 대한 군당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미국군종제도보다 불과 10년 늦게 군종목사제도가 설치됐다. 개신교의 독점적 지위는 군사독재말기인 80년대 말까지 약 20년간 유지됐다. 전군신자화운동을 통해 한국개신교는 글자 그대로 배가하게 되었고, 불교에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개신교는 성장에 정체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 대형광장/체육관집회: 빌리 그래함을 주강사로 한 전설적인 여의도광장집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와 같은 대형집회는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적 행정적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왜 개신교의 대형집회에 대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을까?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주요한 비판세력 가운데 하나였던 진보기독교를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자 대한민국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국제여론을 희석시키고 진보기독교를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 보수기독교는 반공주의의 최전선과도 같다는 것이 군사정권의 인식이었다. 보수기독교를 키워주면 키워줄수록 독재정권은 반공주의를 명분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개신교, 구체적으로 보수계통 개신교는 독재정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대형광장집회, 80년대 들어서는 대형체육관집회를 통해 막강한 세과시를 통한 자신감과 대규모 결신자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 한국개신교는 세계교회가 놀란 급성장의 그늘로서 성장주의, 물량주의, 교회분열에 대한 비판을 받아왔다. 

성장주의와 물량주의는 독재정권이 육성한 반공주의의 전초기지로서 양적 규모가 중요했기 때문에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반공주의와 성장주의, 물량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탄의 무신론사상인 공산주의"를 대적하려면 최소한 남한인구의 일정수준 이상이 '복음화'해야 하고, 남한사회 전체가 복음화할 때 통일은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는 '민족복음화'론은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명분을 주었다.

교회분열은 한국개신교 특유의 근본주의에 잠재되어 있었다. 지역색과 신학적 차이를 비롯한 수많은 '다름'이 곧바로 '틀림'으로 못박힐 수 있었던 까닭은 나와 다르면 곧 자유주의고 이단이고 신앙의 적이기 때문이었다. 반공주의는 근본주의 신학에 잠재되어 있었던 교회분열의 가능성을 현실화하여 통합과 합동 교단의 분열을 비롯한 수많은 사상시비에 명분 노릇을 했다.

한 마디로,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군사정권의 개발독재시대는 한국개신교에 반공주의와 성장주의, 물량주의가 각인되게끔 했고, 내재되어 있던 근본주의 성향이 활짝 꽃피우도록 했다.

공산주의권이 패망한 지금 반공주의는 사실상 실체를 잃어 버린 철지난 시대정신이다. 반공주의 자체를 악마화할 까닭은 없다. 개신교만이 아니라 온 사회가 당시에는 반공주의였다. 개신교는 반공주의라는 시대의 물결을 가장 잘 탈 수 있었던 사회주체였다. 그러나 개신교가 반공주의 적응에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반공주의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인간억압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른 사회주체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다. 아니, 소수의 진보진영 기독교를 제외하면 인식 정도가 가장 뒤쳐져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개신교는 반공주의의 폐해를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의 전망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한 순리일텐데, 아직도 철지난 반공주의에 집착하고 있고, 성장주의, 물량주의를 선으로 여기는 반성경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발독재유산은 결국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주님이 심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여, 깨어나라!


[덧붙임] 
(*1) 이 글의 분석은 대부분 강인철,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중심, 2007)에 의존한다. 강인철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모두 논하는 것은 이 글의 한계를 벗어난다.
딱 한 가지만 간략히 언급해 두고 싶다. 이 글에서는 한기총이 반공이데올로기에 따라 - KNCC에서 1988년 '반공주의를 참회하는 선언문을 낸 데 대한 반발로 - 성립되었다는 강인철(과 아마도 많은 다른 분들)의 주장을 옮기지 않았다. 이 주장이 반은 맞지만 반은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KNCC의 선언문은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인해 조성되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인상깊게 가시화했던 세계적 화해무드에 호응하는 측면이 있었다. 한기총의 설립은 이와 같은 분위기 가운데서 통일 이후 북한복음화를 염두에 두고자 한 보수교계의 움직임이 구체화한 것이었다. 지금 보면 때이른 부푼 꿈이긴 했지만 북한에 단일한 개신교회가 서도록 하는 것과 같은 제안이 나왔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 가운데 있다. 이점에 대해 해당분야 연구자들 쪽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간단하고 부담없는 메모와 같은 이 블로그에서 이를 구구하게 논구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강인철은 적어도 책에 나타난 기술로만 보면 이 측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기총의 현재 모습이 대단히 문제적인 것은 틀림없다. 아울러 한기총을 애써 두둔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때문에 한기총과 이와 관련된 보수교계 인사들의 과거 행적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악마화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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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13. 15:44

천주교 원로사제들의 성명에 존경과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최근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사대강사업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정권, 친기득권적 행보를 보이면서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하던 한국천주교 안팎의 많은 사람 가슴이 더욱 휑하고 추웠다. 

그나마 정의구현사제단의 지속적이고 올곧은 정권비판이 있어서 위안이 됐지만, 이 역시 천주교 일부 고위층의 억압과 견제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만난 상태였다.

이 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심각한 위협을 맞이하고 있는 이 암울한 시국에 원로사제들이 추기경에게 용기있게 용퇴권고를 한데 대해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개신교 목회자들도 조국의 어지러운 현실에 대한 각성과 회개가 담긴 성명을 내주길 촉구한다.

특히 개신교회가 역사의 현실에 동참하는 데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는 정교분리원리라는 종교이데올로기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구한다.

정교분리원리는 어용교회가 실제로는 불의한 정권과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역하면서도 표면적 무관심과 몰가치한 중립으로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 좌파빨갱이정치목사를 힐난하는 바로 그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반동적 극우주의 행태를 보이면서 이를 신앙과 민주주의의 미명으로 포장해 왔다. 적어도 주기도문을 따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단지 교회나 영적 세계만이 아니라 피조세계와 역사의 현실에도 임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지금과 같이 정교분리원리가 악용되어 온 현실에 대한 정당하고 겸허한 신학적 비판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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