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3. 22:10

예수님도 모세의 오경저작설을 인정하셨는가?

모세오경은 모세가 썼는가?


우리 한국교회 회중들에게는 근본주의 신학을 배운 목회자 개인이나 근본주의 계통의 스터디 바이블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해 온갖 경건하고도 허탄한 신화가 유포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통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이 모세의 오경저작설을 인정하셨다는 주장일 것이다.


과연 예수님도 모세의 오경저작설을 인정하셨는가? 그 말이 과연 정말인지, 근거구절 두어 개만 살펴 보도록 하자.


1.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 구절에서 예수님이 율법서(토라)를 "모세의 율법"이라고 지칭하셨다.

어째서 이렇게 지칭하셨을까?


"모세의 율법"이란 표현이 율법서를 가리키는 지시어로서 통하던 당대의 언어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당대에 율법서가 모세의 율법이라고 널리 지칭되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저작권에 대한 당대 통념이 "무오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인정하셨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근본주의자들이 이런 식으로 당대 유대교의 통념을 "무오한 성경"으로 둔갑시키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해 본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이 문제와 아무 상관 없는 문맥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오경저작권은 오경 자체의 내적 증거와 성경개론의 전체맥락을 고려함으로써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당대 언어관습을 따라 율법서를 지칭하는 지시어로 쓰셨다고 해서 저절로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예로, 유다서에서는 "아담의 칠세손 에녹의 예언"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에녹1서를 비롯한 에녹전승을 가리키는 지시어이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이렇게 "인정"했으니까 에녹1서, 또는 2서나 3서는 영감받은 예언인가? 혹은 문자 그대로 에녹이 한 예언일까? 유다서기자는 이 문제에서 에녹저작권의 "인정"이니 뭐니 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 전승이 가리키는 진리의 요소를 독자들에게 가리켜주고 싶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에녹저작권을 운운하고 싶다면 어째서 에녹1서는 성경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물음에 답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이라고 언급하셨다는 이유로 모세저작권이 확립된다면, 또 이 글에서는 따로 더는 다루지 않겠지만 사도들이 "모세의 율법"이라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모세저작권이 확립된다면, 사도가 에녹의 예언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에녹저작권이 확립된다는 말도 성립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저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2 요한복음 5:46~47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는 아예 율법서(토라)가 모세라고 지칭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인가? "모세저작설을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 그러나 모세저작설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이 과연 이런 뜻이 되는가?


이것이 정확하다면 이로부터 모세저작설을 믿지 않는 (사실상 자기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인 바)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도, 성경도 믿지 않는다는 근본주의자들의 추론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추론이 과연 합당한 추론인가? 과연 본문의 정신과 취지가 이것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갖다 붙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유대인들은 "소위 모세저작설도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근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통념에 따라서 당연하게도 모세저작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어째서 예수님께서 이들에 대하여 모세를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을까?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담긴 계시의 정신을 철저히 외면했고,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은 바로 이것이지, 애시당초 모세저작설을 믿으라는 요구가 아니다.


이런 구절이 오경의 모세저작설 증거라고?

오경의 모세저작설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예수님을 믿겠냐고?


나는 근본주의자들이 매사에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아님 말고 식으로 성경인용을 하니 어떻게 예수님을 똑바로 믿겠냐고 되묻겠다.


심지어 성경인용을 틀리게 하는 것도 궁극적인 문제는 아닐 수 있다.

틀린 줄 깨달으면 피차 고치면 될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틀린 성경인용을 고치기는 커녕 전가의 보도 삼아 동료그리스도인들을 자유주의자니 비정통이니 이단이니 낙인찍는 처사는 정말 고약하다. 이렇게 아전인수격으로 성경구절을 갖다 붙여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는 행위야말로 계시의 정신은 철저히 외면하고 하나님의 독생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유대인들과 닮아 있지 않은가?


근본주의가 이런 식으로 폭력적인 성경인용을 일삼는다면 온갖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성경인용으로 스스로 멸망길로 달려가는 사이비이단자들과 과연 무엇이 구분될 수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성경을 가르친다는 목사들이 이젠 좀 이런 허탄한 근본주의 신화를 집착하지 않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