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신학'에 해당되는 글 2건
- 2012.06.25 다중우주론과 하나님의 존재 4
- 2010.10.03 외계생명체와 기독교신앙
우주생성의 시초에는 물리학적 법칙이 있는데 이것이 시공의 비틀림을 통해 우주를 생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빅뱅이 꼭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도 일어날 수 있었으며, "또 다른 우주에서 어느 꼬마의 우주전시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끈이론과 결부되어 다중우주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 주장을 내놓은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반드시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면서 답은 물리학 법칙에서 멈추자고 제안하고 있다.
1. 과학자들이 답을 물리학 법칙에서 멈추자고 말한 것은 그들로선 온당한 태도였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사물에 관한 모든 답을 갖고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낸시 머피의 지적대로 사물을 물리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물리학이라는 한정된 관점에서 사물을 해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한정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는 또 다른 레벨과 관점의 사고를 통해 접근하는 태도가 요청된다.
2. 국내에는 리처드 도킨스 류의 과학근본주의만 널리 알려져 있어서 과학자들이 다 도킨스처럼 유신론을 비웃고 공박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은 저명한 과학자들 가운데 이안 바버, 존 폴킹혼, 아써 피콕과 같은 인물들은 과학적 신학이라는 분야를 연구하는 일급신학자이기도 하다. 도킨스가 일급의 크리스챤 과학자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예로 들었던 인물들이 바로 이들인데, 이들이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과학적 신학을 하는 아직 몇 안 되는 학자들이라는 걸 도킨스는 몰랐던 것 같다. 하물며 과학적 신학을 하지 않는 일급 크리스챤 과학자의 존재에 대해 도킨스가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3. 이와 달리, 문제의 기사에서는 이 과학자들이 빅뱅과 신의 존재를 결부시키는 전통적인 과학적 신학의 영역에서 얘기하는 데서 나름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의 기사작성자가 이런 부분을 생각하고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4. 과학적 신학의 논의에 따르면 물리학 법칙은 하나님의 본질을 반영한다. 따라서 빅뱅 당시 물리학 법칙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에 아무런 반대증거가 되지 못한다.
5. 다중우주론은 어떤가? 성경은 현대의 선적 시간 개념이 가능하게 했던 지적 원천이었기 때문에 성경의 우주론은 단일우주론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아마도 과문의 소치이겠지만, 과학적 신학의 논의에서 아직까지 다중우주론을 흡수한 경우는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살렘왕 멜기세덱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브리서 7장 3절)
여기서 멜기세덱은 신적 제사장으로 나타나며,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중보자적 인물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은 전통적 해결책처럼 단일우주론적이고 선적 시간론에서 예기(anticipation) 개념으로 풀어 나갈 수도 있다.그러나 어쩌면 살렘왕 멜기세덱은 우리 세계가 아닌 다른 다중적 세계에서 중보자적 존재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보다 크다는 라이문도 파니카의 명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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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새 새로 발견된 글리제581g 행성 보도는 특히 눈에 띈다. 이 행성은 약 20광년 떨어진 적색왜성 글리제581 둘레를 도는 골디락스 행성, 즉 차지도 덥지도 않은 지구형 행성이다. 질량은 지구의 3-4배 정도이고, 밤낮이 없어서 밤낮의 경계면이 고정되어 있는데, 이 곳의 기후가 지구 극지방 정도여서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UN에서 외계문명이 접촉해 왔을 경우 공식적으로 영접하는 업부를 맡는 대사를 임명했다는 소식도 나왔었다. 다 '뻥'이라는 UN의 반박기사가 바로 나오기도 했지만, 외계생명의 발견 내지 외계문명의 접촉에 대해 기대감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다 보니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없는 게 아닌가 라는 오래된 물음이 떠오르는 것 같다. 심지어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기독교의 신의 부재로 연결짓는 시각을 기사에서 공공연히 표현한 경우조차 볼 수 있다.(*1)
이런 대중의 호기심은 기독교의 창조신앙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은 첫째, 성경에서 하나님이 지구에만 생명을 창조했다고 기록했을 거라는 짐작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런 짐작은 별 근거가 없다. 창세기 1장은 지구를 배경으로 한 기록이다. 창조과학회에서 하는 식으로 문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굳이 적시하자면 창세기 1장에도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고 쓰여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땅의 생명과 더불어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지구의 생명'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울러, 성경에는 외계인을 숭배하는 종교집단에서 외계인을 기록한 것이라고 착각할 만큼 기괴한 이미지와 상징들이 많이 나타난다. 텍스트의 맥락과 배경을 주의깊게 고려하는 합당한 해석학적 과정을 밟아 성경을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는 하지 않게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최소한 우주 안에서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이미 표현되어 왔다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외계생명체가 발견되면 거기에는 우리가 아는 대로의 '야웨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같은 존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신의 부재를 상상하게 된다.
지적인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이 야웨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모를 가능성은 물론 매우 높다. 왜냐하면, 야웨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 신약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알려진 역사적 칭호들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야웨' 또는 '여호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해당 출애굽기 본문을 히브리성경 원문으로 보면 이것은 원래 이름을 가리키는 특수명사라기 보다는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그다(אהיה אשר אהיה)"라고 뜻을 새길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다. 따라서 지적인 외계생명체가 이런 이름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들 자신의 맥락에서 궁극적 관심을 표현하는 길이 추구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공평과 정의, 사랑과 자비, 양심과 평화, 삶과 죽음 같은 문제는 수학이나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인간만의 것일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죄 문제 역시 인간만의 것일 수 없을 것이다. 지구의 무수한 종교들이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이 문제와 씨름하는 흔적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2)
그렇다면 지구상의 수많은 종교들과, 거기에 더하여 우주의 수많은 종교들이 '백가쟁명'하는 상황 자체가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일까?
사실 굳이 우주로 스케일을 넓힐 것까지도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들과 수많은 신들은 유일신교가 얘기하는 유일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을 구해 보면 된다. 유일신교는 여기에 따로, 저기에 따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다스리는 주체가 따로 있다는 다신교의 믿음을 비판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다스리는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하나의 힘으로서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를테면 글리제581와 태양계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한 분의 초월적인 인격자가 실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라는 낱말의 정의부터가 종교의 백가쟁명 운운하는 것이 번지수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준다.
셋째, 외계생명의 존재에서 신의 부재를 상상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창세기1장은 근본주의가 강변하는 것처럼 단순한 역사적, 자연과학적 보도로 읽혀져야 하는 기록이 아니라, 창세기 기록 당시 고대근동의 지배적인 세계관이었던 당대 바빌로니아 과학의 세계상 속에서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한 기록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과학의 세계상에 따르면 만물은 신들이고, 군주는 신들의 아들이며, 인간은 신의 아들인 군주에게 복종해야 할 노예로 창조되었다. 이에 대하여 창세기기자는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며, 군주가 아닌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창세기 기자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과학적 세계상을 얼마든지 받아들여 비판적으로 소화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로 똑같은 알맹이의 창조신앙을 고백할 수 있고, 고백해야 한다. 인간은 오늘날 지배적인 자연과학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그저 어쩌다가 생겨난 우주의 먼지 정도인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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