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4. 15:02

북한의 연평도 도발과 한반도의 운명

연평도에서 북한군이 연평도에서 훈련중이던 우리 군과 주민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목숨을 잃은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에게 삼가 깊은 애도를 표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번 북한의 도발은 미국과 현정권의 강경일변도의 대북관계노선이라는 환경 속에서 김정일-김정은 후계구도의 안정화라는 동기에서 나온 계산된 행동이었다. 아울러 G20정상회의 이후 터져나오리라 예상되던 정부여당의 악재들이 이 도발을 통해 한동안 묻힐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남북한 집권층의 상호교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사전교감이 있었든 없었든, 결과적으로 이번 연평도 사건을 통해 북한 집권층은 내부 반발을 잠재우면서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고화하고, 남한 집권층 역시 대중의 증오심과 분노를 북한으로 돌림으로써 지지층을 재결집시켜 집권 후반기의 동력을 얻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1)

한반도의 집권세력들이 희생양을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고 그럼으로써 이 땅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관행은 슬프게도 벌써 두 세대를 이어온 오랜 버릇이다. 남한은 북한에게, 북한은 남한에게 서로 희생양노릇을 떠넘기고, 남북한은 각기 내부적으로 또다른 희생양을 만들어 긴장을 조성하고 거슬리는 의견을 묵살하고 '정의와 역사의 이름으로' 처단함으로써 자기 체재를 유지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이런 걸 어떻게 정의라고 하겠는가. 이런 걸 두고 역사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희생양만들기로는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사의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 없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들이 흔하게 겪는 희생양의 하나로 그칠 뿐이다. 희생양만들기는 생명의 문화가 아니라 의분으로 자기 살의를 정당화하는(Erich Fromm) 죽음의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 희생양만들기는 자멸의 역사를 만들 뿐이다.

한반도의 경우, 남북한의 갈등을 기화로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군사외교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현재로선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므로 이런 상황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남북한이 '희생양만들기놀이'를 하다가 어느 시점엔가 장난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남북한은 희생양만들기놀음을 그쳐야 한다. 희생양만들기로는 언제까지나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과 분노와 증오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원한이 사회를 흔들고 좀먹는다.

특히 남한사회의 책임이 크다. 북한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에서 갈 길이 아직도 아득히 멀다. 남한은 북한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 누리는 입장으로서 북한과 같은 수준일 수 없다. 북한을 앞서 이끌어 나갈만한 포용력과 저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희생양만들기가 아니라 진정한 공평과 정의가 흘러넘치는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집권층은 사건으로 사건을 덮거나, 거짓정보를 흘림으로써 여론을 선동하여 정의를 흐리는 악행을 그쳐야 한다. 법조계는 돈이나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결을 굽게 하여 약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힘있는 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더러운 관행을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공평과 정의로 처리된다는 믿음이 국민 사이에 가득해야 한다. 언론선전과 이데올로기 세뇌를 통한 허위의식으로 만들어진 거짓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지도자와 백성 모두가 함께 공평과 정의라는 대의로 진정 돌이킴으로써 이룩한 상호신뢰를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상호신뢰는 공평과 정의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희생양만들기가 아니라 공평과 정의가 이 땅의 역사를 이끌고 나가도록 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여기서 감당해야만 할 몫이 있다. 한국교회는 남한사회의 희생양만들기관행에 참여하기를 그쳐야 한다. 사람들에게 부질없는 허위의식 주입하기를 그쳐야 한다. 한국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이 아니라 반공이데올로기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인 것처럼 거들먹거릴 때가 많았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증오와 저주를 거리낌없이 내뱉으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다고 굳게 믿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이런 목사들을 환영하며 적극 따라가는 교인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을 그쳐야 한다. 희생양만들기가 이 땅에서 발붙일 곳이 없도록 우리 사회의 방향을 돌이킬 때 평화통일이라는 한반도의 운명도 성취될 것이다.

[덧붙임]
*1.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장기적 비전을 잃어 버린 채 내부결속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상태로 주민들을 내몰아야 하는 북한정권의 붕괴직전상태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체재가 예전보다 덜 견고해졌다는 징후가 보인다는 점에서 이 분석에 일부 동의하지만 북한군부와 중국의 공고한 커넥션의 존재를 간과해선 안 된다.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무너진다고 북한이 곧 붕귀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0. 10. 3. 17:19

희생양

MBC스페셜의 타블로편을 봤다. 참 저렇게 뛰어난 천재가 집단의 비뚤어진 시기와 증오를 받아내느라 너무 고생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타블로의 말대로 타진요나 상진세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봐도 믿지 않을 듯 싶다. 심지어 이들이나 이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조차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냥 아둥바둥 살아온 내 현실은 시궁창인데 타블로라는 캐나다 국적의 뛰어난 젊은이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부와 명성을 누리는 걸로 보이는 게 고깝고 싫고 미운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타블로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배제대상으로서의 '외인(外人)'(또는 '人外')일 수밖에 없다. 학력논란은 결국 그들의 불타는 증오심을 둘러대는 그럴싸한 자기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

새삼 페노메논이라는 한 20년 전 영화가 생각난다. 미국 한 시골의 사람 좋은 한 젊은 남자가 하늘에서 이상한 빛을 본 뒤 갑자기 천재 초능력자가 된다. 이웃들과 두루 사이 좋았던 이 남자는 하루 아침에 외톨이, 왕따가 되어 버린다. 사실 당시 '파우더' 같은 비슷한 작품도 나왔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걸로 영화 한 편을 만들기엔 진부해지다시피 한 낡은 플롯이다.

이런 진부한 가락이 현실이 되어 반 년 동안이나 우리 사회에 울려퍼지고 있으니 참 답답한 세상이다. 가진 건 사람 밖에 없는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부대끼며 사는 주제에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애꿎은 희생양을 찾아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가 희생양을 만들어 억압하고 처단함으로써 보람과 힘을 느끼는 변태적 상태로 떨어진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1) 거슬러 올라가 보면 친일파세력이 이승만정권 하에서 권력을 거머쥐면서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에 대한 논란을 덮을 요량으로 반공이데올로기에 열을 올렸던 것이 아마 현대한국사회의 희생양만들기 관행의 싹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친일파 박정희 대통령(*2) 역시 반공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으로 대중의 증오를 담당시킬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 논란을 덮었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들의 후예인 한나라당이 오늘날까지도 이 비루한 짓을 하고 있다.

타블로의 학력논란이 새로운 점은 희생양만들기가 정권을 잡은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조작(*3)에 따른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악플이라는 수단을 통해 집단적으로 희생양을 매겨놓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효순미선이 사건, 미국쇠고기파동 등의 집단적 항의와 저항에 좌절된 뒤로 터져나올 곳을 찾지 못한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가 이런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오고 있다.(*4) 기득권자들로서는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나 연예 영역에서 대중의 에너지가 분출되도록 내버려 두고, 심지어 조장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정치적 이슈가 대중의 장에서 공론화되지 못하도록 집요하고도 조용하게 억압하는 전략이 한결 쉬울 수 밖에 없다. 대중의 눈이 기득권을 예리하게 감시하고 그 검은 속내를 꿰뚫어 보는 부담을 적당한 이슈를 흘려줌으로써 간단히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조작은 한국사회의 대중 가운데서 내면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이 이런 쓸데없는 논란에 빠져 힘을 뺀다면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조작과 억압은 한층 쉬워질 수밖에 없다. 타블로현상을 보니 타블로 개인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 겨레의 역사와 앞날에 대한 착잡하고 절박한 느낌에 입맛이 쓰다.(*5)(*6)

[덧붙임]
*1.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그의 여러 책에서 사회가 사도마조키즘적 메커니즘에 빠진 병리적 상태에 관해 분석한 바 있다. 르네 지라르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사회의 주체들이 희생양을 만들어 죽이고 이 죄악을 덮는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주체간의 살인욕구를 잠재우는 현상을 갈파한 바 있다. 두 분석은 똑같은 실재를 서로 다른 언어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 피력한 내 견해는 이들의 분석에 따라 한국사회를 생각해 본 것이다.
*2.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파논란은 주류언론이 집요하게 물타기하려는 이슈이다. 공산주의자 전력도 덮으려는 마당에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박정희는 공산주의 전력이 있지만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친일행적이 있지만 친일파는 아니었다는 궤변에 다름없다.
*3.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조작은 굳이 증거를 더 들이댈 필요조차 없을 만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진부한 가락이다. 이게 대중에게 그토록 잘 먹혀들다니 신기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4. 물론 이들의 카페매니저 '왓비컴즈'가 대중을 세뇌하여 그들의 에너지를 조작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트는 이데올로그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MBC스페셜 후편에서 민경배가 지적했다시피 이들의 시스템은 신흥종교의 교주와 신도들의 관계와 몹시도 닮아있다. 사이비이단문제를 다뤄본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봐도 적절한 분석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가렛 싱어도 신흥종교의 시스템이 세뇌에 의해 구축된다는 점을 지적했던 바 있다.
*5. 인터넷을 좀 뒤지다 보니 문화평론가 하재근이 나와 비슷한 논지로 레디앙에 쓴 글을 만날 수 있었다. 하재근은 일부 누리꾼들이 겨냥하는 타블로의 '죄목'이 사실은 특권층들의 죄목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번지수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타진요의 주장과 타진요 운영자 왓비컴즈에 대한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놓은 글은 방송 훨씬 이전에 이미 나와있었다.
*6. 원래 나는 타블로와 에픽하이, 대중음악 자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이번에 이 글을 포스팅하고 나서 에픽하이의 노래 중 '희생양'이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비판적 논조의 가사와 곡 분위기가 맘에 든다. 어쩌면 에픽하이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