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2. 10:41

4.11 선거 단상

이번 선거, 정말 놀랍다.

한반도를 가득히 덮은 저 빨간 색이라니...


새누리당이 선거전략과 물량동원력에서 한 수 위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꿔 달 때 별 짓을 다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게 고스란히 먹혀 들었다. 박근혜당으로서 이명박 한나라당과 부단히 선긋기를 해나갔고, 공천과정에서도 한나라당 시절 구태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환골탈태, 명실상부한 면모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새누리당의 실체가 현정권과 다르다는 (사실은 희한한)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특히 젊은 층에 대한 전략적인 어필도 최소한 목적한 바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손수조 등 젊은 정치가들을 영입하여 새누리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젊은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 손수조 후보가 지역구에서 결과로는 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새누리당 선거캠프에서도 이 카드는 어차피 버리는 카드였을 것으로 보인다. 기왕 버리는 카드,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으니 가장 영악하게 활용하고 버려보자는 심산 아니었을까. 손수조 후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던 '자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멘트는 흡사 사극에서 악의 무리에 괴롭힘 당하는 가련한 여주인공의 대사와도 같았다. 그 멘트가 계산됐는지, 혹은 불러줬는지, 혹은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를 보며 선악구도를 잡는데 익숙한 전국의 젊은 세대 상당수는 새누리당은 악의 세력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라도 교란이 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선거광고 역시 젊은 층의 감각에 맞아 떨어졌다. 새누리당이 새됐다는 광고, 정말 그 내용은 구린 냄새 나는 수구의 정체를 숨길 수가 없었지만, 젊은 층에 대한 소통의 노력만은 가상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어차피 내용이나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88만원 세대요, 반값 등록금으로 자신들에게 호되게 당한 세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영상세대요, 반민주독재세력과 처절한 투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탈정치화세대이기도 하지 않은가. 따라서 젊은 유권자들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 이미지를 흔들어 헷갈리게 하는 게 1차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은 최소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얇은 자기 당에 대한 이미지를 교란시키는데 성공했다.


선거문구 하나를 뽑아도 새누리당과 야권은 격차가 정말 컸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 때도 비록 지긴 했지만 나경원 후보 쪽 선거문구는 피부에 와닿는 정서적 표현으로 부드럽고 그럴싸 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면에서 박원순 후보 쪽보다 우월했다. 아마 악재가 터지지 않았다면 결과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도 야권은 선거문구 하나 뽑는데도 정말 구태의연했다. 심지어 어느 지역을 가다 보니 통합민주당 후보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태의연한 선거문구까지 쓰고 있었다. 


막판에 터진 김용민 후보의 막말전력시비도 결국 이미지 문제로 귀결된다. 조중동에서는 역시나 막대한 물량을 동원한 침소봉대 신공으로 목사 아들인 김용민 후보가 한국교회 전체를 비방하고 욕보였다는 식으로 팩트를 비틀어 재림한 가룟 유다 쯤으로 개신교인들에게 비춰지게끔 만들었다. 결국 김용민 후보의 막말전력시비는 수구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신봉해 마지 않는 "보수=애국=복음주의=새누리당(=기타등등)" 프레임이 전국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미지로 판단하는 보통사람들의 정서가 자극되고 격앙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현정권의 악행보다도 눈 앞에 보이는 '막말을 한 전력이 있다는', '가룟 유다 같은' '웬 더벅머리 새파랗게 어린 후보놈'과 '그런 놈을 후보로 내세운 당'이 더 밉게 보이기 때문이다.(*1)


결국 새누리당은 빈약한 명분과 내용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이미지를 공략한 덕분에 민간인불법사찰과 언론장악과 재벌독식경제와 수많은 현정권의 악행에 공범이자 공동주범임에도 성공적으로 꼬리자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임]

*1: 새누리당 쪽 후보들은 성폭행과 논문표절과 친일발언을 하고도 거뜬히 당선될 수 있었다. 김용민 후보의 허물이 이런 자들에 견주어 그 정도로 큰 것이었단 말인가. 이런 차이는 조중동의 막강한 이미지조작능력과 여기에 적극호응하여 결집하는 보수근본주의개신교 세력을 빼곤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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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화된밤 2012.04.14 12:40 address edit & del reply

    참 뜻밖에 결과였습니다. 다된밥에 코빠뜨렸다고 할까요? 거의 줘도 못먹는 수준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새누리당(이름도 아직 어색하네요)이 이런저런 이미지 공략을 했다고 해도 그런 핸디캡을 가진 상대를 이기지 못한 통합민주당도 잘한게 없는듯 합니다. 너무 우습게 본걸까요? 박근혜대표가 잘한걸까요, 통합민주당이 못한걸까요? 어이없는 결과에 실소만 나옵니다. 하하~ 그냥 웃지요! 늘 평안하세요~

    • 멋진비움 2012.04.14 20:04 신고 address edit & del

      전 새누리당이 역시 만만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녹색한반도를 이룰 날이 반드시 오리라 기대합니다. 정화된밤님도 평안하세요^^

  2. 2012.04.15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2.04.16 21:08 address edit & del

      비밀댓글입니다

  3. 구사 2012.05.03 16:23 address edit & del reply

    마땅히 어디에 글을 올려야 할지 몰라 그냥 여기에 올립니다...

    6년전에 무물카페에서 카톨릭 분들과 외경논쟁하신 글을 전부 읽었습니다..
    대단하신 내공으로 제압을 하셨는데...그 자료를 제가 카톨릭 분들과 토론시 많이 써먹거든요..
    어떤 분이 이 블러그를 알려주셔서...인사라도 드릴려고 글을 남깁니다..혹 운영하시는 카페나 다른 블러그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멋진비움 2012.05.03 22:4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끔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고 따로 운영하는 카페나 블로그는 없습니다

  4. mystory 2012.05.08 11:43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새빨간 지도를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요? 이번에 통합진보당 하는꼴을 보니 왜 이런 결과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1. 11. 22. 23:00

한미 FTA 날치기 통과: 지옥문이 열리다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늘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시는 우리 가카와 딴나라당.

IMF가 터질 때 강남부유층은 지금만 같아라를 외치며 희희낙락했다는데
그연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구나.

참 대단들하십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선 나라 팔아먹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시죠.
사대강을 쑥대밭으로 삽질해놓으시더니 또 한 건 하셨습니다 그려.

노무현이 시작한 한미 FTA를 자기들이 끝내겠다는 게 그들의 선전이었다.
어떻게 그거랑 이게 같을 수 있는가?

노무현 때는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퇴임 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자 노무현도 한미FTA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금융서비스시스템에 가히 악마적인 근본적 구멍이 있다는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때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독소조항은 더이상 유지되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한미 FTA?
게다가 날치기 통과까지?

결국 이런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앉혀놓은 국민들이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안이한 선택을 한 당사자들은 결코 책임지게 되지 않겠지.
다만 그 자손들, 젊은 세대와 어린 세대가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지 편한 세상'을 살아가시는 수꼴기득권이 활개치고
전국민의 수꼴화를 조종하시는 어용적 언론미디어에
수꼴이데올로기를 하나님의 뜻과 가뿐하게 동일시해주시는 십자가군병들이 길길이 날뛰며 설쳐대는...

조국의 앞날이 참으로 암울해 보이니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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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8. 10:18

4 27 재보선 결과에서 그나마 희망을 본다

솔직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아니, 한나라당은 어떻게 이따위로 하고서도 이렇게나 표가 많이 나오나?
그 시커먼 속이 훤히 보이는 여론조작이며, 국민과 나라살림은 안중에도 없이 밀어붙이는 사대강사업이며, 지들 잇속 챙기려고 국정을 농단하는 저 작태며, 선거 때마다 때맞춰 북한 책동 운운하는 저 짓들이다 괜찮단 말인가? 저 사람들이 실제 정책으로 보호하고 대변하는 이 나라 국민이 한 5%나 될까.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지지자가 많을 수 있을까!

노전대통령이 조중동에 휘둘리고 황당무계한 사유의 탄핵이며 기침 깨나 한다는 사회원로들이며 어쭙잖게 이리저리 낚여 부화뇌동한 여론한테 처절하게 씹히며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졌던 그때 그 양반이 대체 무얼 그렇게나 잘못했던가? 무슨 전횡을 그렇게나 저질렀던가? 그게 무어라고 믿든 간에, 정말 현정권에서는 '그 정도 일'은 콧방귀 뀔 정도 깜밖에 안 된다!

왜 그들은 콧방귀를 뀌어왔는가.
어차피 표는 나오게 돼 있다는 거다.

이번 선거에서도 정말 우습지도 않게 표가 많이 나왔다.
그렇게나 전횡을 저지르고도!

노전대통령의 한이 서려 있는 김해을에서 비리 때문에 청문회 인선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인물이 '인물값'으로 당선됐다니 진짜 정말 괴이하다. 이런 사람을 국회에 보내주다니 말이 되는가. 지역구에 이런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지역의 시민들은 모욕감을 느꼈어야 마땅했다.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건 한나라당 조직표이고, 조직적인 동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거꾸로, 유시민이 경기도지사선거에 이어 김해을에서도 쓴 맛을 본 것은 조직과 부정선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번 선거 패배를 유시민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진작 퇴출되었어야 할 수구정당이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아직도 새로운 정당과 정치인이 바로 설 수 없는 것은 이 나라가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나마 희망을 봤다고 결론을 맺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분당과 강원도가 어느 한 곳이라도 넘어갔다면 정말 억장이 무너질 뻔 했다. 무고한 이광재 전지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한나라당이 어처구니없는 엄기영을 내세워 강원도에서 승리해선 안 되는 것은 사필귀정이었다. 특히 분당이 살아남아줘서 정말 고맙다. 시원한 물줄기와 같은 주권행사를 해 준 분당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부디 이대로 쭉 이어져서 강남3구에서도 기득권자들의 전횡에 대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부디 강남에도 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반한나라당 어젠다만으로는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를 기약할 수 없다. 반한나라당 어젠다는 분단현실을 고착화하여 제 잇속을 챙기려는 반통일세력으로서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를 방해해 온 사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만일 반한나라당세력도 분단현실을 고착화하여 제 잇속 챙기는 반통일세력으로 전락한다면 그 역사적 정당성을 잃어 버릴 수밖에 없다. 야권연대가 역사적 정당성을 담보하려면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대승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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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13. 15:44

천주교 원로사제들의 성명에 존경과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최근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사대강사업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정권, 친기득권적 행보를 보이면서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하던 한국천주교 안팎의 많은 사람 가슴이 더욱 휑하고 추웠다. 

그나마 정의구현사제단의 지속적이고 올곧은 정권비판이 있어서 위안이 됐지만, 이 역시 천주교 일부 고위층의 억압과 견제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만난 상태였다.

이 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심각한 위협을 맞이하고 있는 이 암울한 시국에 원로사제들이 추기경에게 용기있게 용퇴권고를 한데 대해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개신교 목회자들도 조국의 어지러운 현실에 대한 각성과 회개가 담긴 성명을 내주길 촉구한다.

특히 개신교회가 역사의 현실에 동참하는 데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는 정교분리원리라는 종교이데올로기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구한다.

정교분리원리는 어용교회가 실제로는 불의한 정권과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역하면서도 표면적 무관심과 몰가치한 중립으로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 좌파빨갱이정치목사를 힐난하는 바로 그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반동적 극우주의 행태를 보이면서 이를 신앙과 민주주의의 미명으로 포장해 왔다. 적어도 주기도문을 따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단지 교회나 영적 세계만이 아니라 피조세계와 역사의 현실에도 임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지금과 같이 정교분리원리가 악용되어 온 현실에 대한 정당하고 겸허한 신학적 비판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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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0. 3. 17:19

희생양

MBC스페셜의 타블로편을 봤다. 참 저렇게 뛰어난 천재가 집단의 비뚤어진 시기와 증오를 받아내느라 너무 고생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타블로의 말대로 타진요나 상진세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봐도 믿지 않을 듯 싶다. 심지어 이들이나 이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조차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냥 아둥바둥 살아온 내 현실은 시궁창인데 타블로라는 캐나다 국적의 뛰어난 젊은이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부와 명성을 누리는 걸로 보이는 게 고깝고 싫고 미운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타블로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배제대상으로서의 '외인(外人)'(또는 '人外')일 수밖에 없다. 학력논란은 결국 그들의 불타는 증오심을 둘러대는 그럴싸한 자기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

새삼 페노메논이라는 한 20년 전 영화가 생각난다. 미국 한 시골의 사람 좋은 한 젊은 남자가 하늘에서 이상한 빛을 본 뒤 갑자기 천재 초능력자가 된다. 이웃들과 두루 사이 좋았던 이 남자는 하루 아침에 외톨이, 왕따가 되어 버린다. 사실 당시 '파우더' 같은 비슷한 작품도 나왔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걸로 영화 한 편을 만들기엔 진부해지다시피 한 낡은 플롯이다.

이런 진부한 가락이 현실이 되어 반 년 동안이나 우리 사회에 울려퍼지고 있으니 참 답답한 세상이다. 가진 건 사람 밖에 없는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부대끼며 사는 주제에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애꿎은 희생양을 찾아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가 희생양을 만들어 억압하고 처단함으로써 보람과 힘을 느끼는 변태적 상태로 떨어진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1) 거슬러 올라가 보면 친일파세력이 이승만정권 하에서 권력을 거머쥐면서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에 대한 논란을 덮을 요량으로 반공이데올로기에 열을 올렸던 것이 아마 현대한국사회의 희생양만들기 관행의 싹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친일파 박정희 대통령(*2) 역시 반공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으로 대중의 증오를 담당시킬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 논란을 덮었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들의 후예인 한나라당이 오늘날까지도 이 비루한 짓을 하고 있다.

타블로의 학력논란이 새로운 점은 희생양만들기가 정권을 잡은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조작(*3)에 따른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악플이라는 수단을 통해 집단적으로 희생양을 매겨놓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효순미선이 사건, 미국쇠고기파동 등의 집단적 항의와 저항에 좌절된 뒤로 터져나올 곳을 찾지 못한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가 이런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오고 있다.(*4) 기득권자들로서는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나 연예 영역에서 대중의 에너지가 분출되도록 내버려 두고, 심지어 조장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정치적 이슈가 대중의 장에서 공론화되지 못하도록 집요하고도 조용하게 억압하는 전략이 한결 쉬울 수 밖에 없다. 대중의 눈이 기득권을 예리하게 감시하고 그 검은 속내를 꿰뚫어 보는 부담을 적당한 이슈를 흘려줌으로써 간단히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조작은 한국사회의 대중 가운데서 내면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이 이런 쓸데없는 논란에 빠져 힘을 뺀다면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조작과 억압은 한층 쉬워질 수밖에 없다. 타블로현상을 보니 타블로 개인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 겨레의 역사와 앞날에 대한 착잡하고 절박한 느낌에 입맛이 쓰다.(*5)(*6)

[덧붙임]
*1.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그의 여러 책에서 사회가 사도마조키즘적 메커니즘에 빠진 병리적 상태에 관해 분석한 바 있다. 르네 지라르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사회의 주체들이 희생양을 만들어 죽이고 이 죄악을 덮는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주체간의 살인욕구를 잠재우는 현상을 갈파한 바 있다. 두 분석은 똑같은 실재를 서로 다른 언어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 피력한 내 견해는 이들의 분석에 따라 한국사회를 생각해 본 것이다.
*2.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파논란은 주류언론이 집요하게 물타기하려는 이슈이다. 공산주의자 전력도 덮으려는 마당에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박정희는 공산주의 전력이 있지만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친일행적이 있지만 친일파는 아니었다는 궤변에 다름없다.
*3.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조작은 굳이 증거를 더 들이댈 필요조차 없을 만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진부한 가락이다. 이게 대중에게 그토록 잘 먹혀들다니 신기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4. 물론 이들의 카페매니저 '왓비컴즈'가 대중을 세뇌하여 그들의 에너지를 조작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트는 이데올로그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MBC스페셜 후편에서 민경배가 지적했다시피 이들의 시스템은 신흥종교의 교주와 신도들의 관계와 몹시도 닮아있다. 사이비이단문제를 다뤄본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봐도 적절한 분석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가렛 싱어도 신흥종교의 시스템이 세뇌에 의해 구축된다는 점을 지적했던 바 있다.
*5. 인터넷을 좀 뒤지다 보니 문화평론가 하재근이 나와 비슷한 논지로 레디앙에 쓴 글을 만날 수 있었다. 하재근은 일부 누리꾼들이 겨냥하는 타블로의 '죄목'이 사실은 특권층들의 죄목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번지수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타진요의 주장과 타진요 운영자 왓비컴즈에 대한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놓은 글은 방송 훨씬 이전에 이미 나와있었다.
*6. 원래 나는 타블로와 에픽하이, 대중음악 자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이번에 이 글을 포스팅하고 나서 에픽하이의 노래 중 '희생양'이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비판적 논조의 가사와 곡 분위기가 맘에 든다. 어쩌면 에픽하이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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