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7. 00:41

"자본주의는 끝났다."

MB의 사람인 강만수 현 산은지주금융회장까지도 얼마전 현 상황이 "대공황 때보다 심각하다,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말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게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았다면 이탈리아도 멀잖았고, 프랑스도 위태롭다. 유럽연합과 유로화, 더 나아가 미국과 일본과 중국이 휘청거릴 것이며, 미국 대공황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자본주의 체재의 엄중한 위기가 전지구촌을 휩쓸 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과 중국의 경제권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는 더욱 절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올해 국내 대선에서 이 중대하고 엄중한 문제에 대한 국가적인 대비책이 제시되어야 하고, 여기에 대해 누군가는 서민대중,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전문가적인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할텐데, 이 사람들이 해묵은 반공주의 프레임의 진흙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공근본주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나라 교회는 어떤가. 설교자가 하나님 나라는 반공주의나 반공근본주의가 아니며, 반공주의나 반공근본주의는 지나갈 이 세대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포하면 '논란이 될 것은 다루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해서는 안 될 얘길 한 사람처럼 '디스' 당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어찌할 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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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2. 10:41

4.11 선거 단상

이번 선거, 정말 놀랍다.

한반도를 가득히 덮은 저 빨간 색이라니...


새누리당이 선거전략과 물량동원력에서 한 수 위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꿔 달 때 별 짓을 다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게 고스란히 먹혀 들었다. 박근혜당으로서 이명박 한나라당과 부단히 선긋기를 해나갔고, 공천과정에서도 한나라당 시절 구태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환골탈태, 명실상부한 면모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새누리당의 실체가 현정권과 다르다는 (사실은 희한한)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특히 젊은 층에 대한 전략적인 어필도 최소한 목적한 바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손수조 등 젊은 정치가들을 영입하여 새누리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젊은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 손수조 후보가 지역구에서 결과로는 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새누리당 선거캠프에서도 이 카드는 어차피 버리는 카드였을 것으로 보인다. 기왕 버리는 카드,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으니 가장 영악하게 활용하고 버려보자는 심산 아니었을까. 손수조 후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던 '자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멘트는 흡사 사극에서 악의 무리에 괴롭힘 당하는 가련한 여주인공의 대사와도 같았다. 그 멘트가 계산됐는지, 혹은 불러줬는지, 혹은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를 보며 선악구도를 잡는데 익숙한 전국의 젊은 세대 상당수는 새누리당은 악의 세력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라도 교란이 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선거광고 역시 젊은 층의 감각에 맞아 떨어졌다. 새누리당이 새됐다는 광고, 정말 그 내용은 구린 냄새 나는 수구의 정체를 숨길 수가 없었지만, 젊은 층에 대한 소통의 노력만은 가상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어차피 내용이나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88만원 세대요, 반값 등록금으로 자신들에게 호되게 당한 세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영상세대요, 반민주독재세력과 처절한 투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탈정치화세대이기도 하지 않은가. 따라서 젊은 유권자들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 이미지를 흔들어 헷갈리게 하는 게 1차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은 최소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얇은 자기 당에 대한 이미지를 교란시키는데 성공했다.


선거문구 하나를 뽑아도 새누리당과 야권은 격차가 정말 컸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 때도 비록 지긴 했지만 나경원 후보 쪽 선거문구는 피부에 와닿는 정서적 표현으로 부드럽고 그럴싸 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면에서 박원순 후보 쪽보다 우월했다. 아마 악재가 터지지 않았다면 결과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도 야권은 선거문구 하나 뽑는데도 정말 구태의연했다. 심지어 어느 지역을 가다 보니 통합민주당 후보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태의연한 선거문구까지 쓰고 있었다. 


막판에 터진 김용민 후보의 막말전력시비도 결국 이미지 문제로 귀결된다. 조중동에서는 역시나 막대한 물량을 동원한 침소봉대 신공으로 목사 아들인 김용민 후보가 한국교회 전체를 비방하고 욕보였다는 식으로 팩트를 비틀어 재림한 가룟 유다 쯤으로 개신교인들에게 비춰지게끔 만들었다. 결국 김용민 후보의 막말전력시비는 수구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신봉해 마지 않는 "보수=애국=복음주의=새누리당(=기타등등)" 프레임이 전국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미지로 판단하는 보통사람들의 정서가 자극되고 격앙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현정권의 악행보다도 눈 앞에 보이는 '막말을 한 전력이 있다는', '가룟 유다 같은' '웬 더벅머리 새파랗게 어린 후보놈'과 '그런 놈을 후보로 내세운 당'이 더 밉게 보이기 때문이다.(*1)


결국 새누리당은 빈약한 명분과 내용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이미지를 공략한 덕분에 민간인불법사찰과 언론장악과 재벌독식경제와 수많은 현정권의 악행에 공범이자 공동주범임에도 성공적으로 꼬리자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임]

*1: 새누리당 쪽 후보들은 성폭행과 논문표절과 친일발언을 하고도 거뜬히 당선될 수 있었다. 김용민 후보의 허물이 이런 자들에 견주어 그 정도로 큰 것이었단 말인가. 이런 차이는 조중동의 막강한 이미지조작능력과 여기에 적극호응하여 결집하는 보수근본주의개신교 세력을 빼곤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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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화된밤 2012.04.14 12:40 address edit & del reply

    참 뜻밖에 결과였습니다. 다된밥에 코빠뜨렸다고 할까요? 거의 줘도 못먹는 수준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새누리당(이름도 아직 어색하네요)이 이런저런 이미지 공략을 했다고 해도 그런 핸디캡을 가진 상대를 이기지 못한 통합민주당도 잘한게 없는듯 합니다. 너무 우습게 본걸까요? 박근혜대표가 잘한걸까요, 통합민주당이 못한걸까요? 어이없는 결과에 실소만 나옵니다. 하하~ 그냥 웃지요! 늘 평안하세요~

    • 멋진비움 2012.04.14 20:04 신고 address edit & del

      전 새누리당이 역시 만만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녹색한반도를 이룰 날이 반드시 오리라 기대합니다. 정화된밤님도 평안하세요^^

  2. 2012.04.15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2.04.16 21:08 address edit & del

      비밀댓글입니다

  3. 구사 2012.05.03 16:23 address edit & del reply

    마땅히 어디에 글을 올려야 할지 몰라 그냥 여기에 올립니다...

    6년전에 무물카페에서 카톨릭 분들과 외경논쟁하신 글을 전부 읽었습니다..
    대단하신 내공으로 제압을 하셨는데...그 자료를 제가 카톨릭 분들과 토론시 많이 써먹거든요..
    어떤 분이 이 블러그를 알려주셔서...인사라도 드릴려고 글을 남깁니다..혹 운영하시는 카페나 다른 블러그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멋진비움 2012.05.03 22:4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끔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고 따로 운영하는 카페나 블로그는 없습니다

  4. mystory 2012.05.08 11:43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새빨간 지도를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요? 이번에 통합진보당 하는꼴을 보니 왜 이런 결과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1. 11. 22. 23:00

한미 FTA 날치기 통과: 지옥문이 열리다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늘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시는 우리 가카와 딴나라당.

IMF가 터질 때 강남부유층은 지금만 같아라를 외치며 희희낙락했다는데
그연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구나.

참 대단들하십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선 나라 팔아먹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시죠.
사대강을 쑥대밭으로 삽질해놓으시더니 또 한 건 하셨습니다 그려.

노무현이 시작한 한미 FTA를 자기들이 끝내겠다는 게 그들의 선전이었다.
어떻게 그거랑 이게 같을 수 있는가?

노무현 때는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퇴임 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자 노무현도 한미FTA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금융서비스시스템에 가히 악마적인 근본적 구멍이 있다는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때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독소조항은 더이상 유지되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한미 FTA?
게다가 날치기 통과까지?

결국 이런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앉혀놓은 국민들이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안이한 선택을 한 당사자들은 결코 책임지게 되지 않겠지.
다만 그 자손들, 젊은 세대와 어린 세대가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지 편한 세상'을 살아가시는 수꼴기득권이 활개치고
전국민의 수꼴화를 조종하시는 어용적 언론미디어에
수꼴이데올로기를 하나님의 뜻과 가뿐하게 동일시해주시는 십자가군병들이 길길이 날뛰며 설쳐대는...

조국의 앞날이 참으로 암울해 보이니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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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4. 21:35

한국사회와 한국개신교 - 1990년대와 향후 10년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사회적 힘을 집중했다. DJ 정권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시민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룩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MB정권하에서 벌어지는 온갖 반민주주의적 참상으로부터 돌이켜 보면 현혹스러운 외양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2000년대 이전에 한국개신교회는 요즘의 요란한 모습에 비하면 비교적 '얌전하게'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새삼 되짚어 보면 1990년대는 역시 상당히 중요한 한국교회의 분수령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군사정권의 종식에 즈음하여 군종제도 등을 통해 반공주의 확산을 대가로 거의 독점적으로 누리던 독재정권의 비호와 지원이 물심양면에서 상당부분 사라졌고, 이와 동시에 교세성장률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개발독재이념의 어용종교버전이었던 반공주의적 근본주의는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닐 수 없었다.

1
992년 시한부종말론 소동은 당시 어용종교 버전 근본주의의 통제력과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중요한 신호와도 같았다. 물론 비슷한 유의 소동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런 소동이 냉전의 묵시문학적 공포분위기에 울려퍼지는 간주곡 정도였다면, 이제 그런 식으로 '강력한' 묵시문학적 공포분위기의 임박한 종말론으로 협박하는 논조는 페레스트로이카와 문민정권 출범 이후 한결 밝아진 사회분위기와는 제대로 어울릴 수 없는 불협화음에 지나지 않았다. 언론매체는 그들의 그로테스크한 광신적 집회광경을 여과 없이 대중에 노출해 줌으로써 한국사회에 근본주의의 벌거벗은 수치를 폭로해주었다.

어용종교 버전의 주류 근본주의가 이들이 신봉하는 유의 세대주의와 신학적으로 선을 긋는데 주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그렇게 그로테스크한 광신적 집회광경은 꼭 시한부종말론을 추종하는 교회나 기도원이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광경이 광신도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일반교회들은 세대주의 종말론 설교에 대해 선을 긋고 '건전한 신앙'을 역설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92년 시한부종말론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아울러 여전히 세대주의 종말론과 음모론을 추종하는 보수진영 내의 비주류는 90년대 이후 어용종교적 근본주의 주류세력과 다르게 분화되는 길로 접어든다.

이 무렵 진보와 보수 양진영이 서로 '연합'하고자 하는 제스처가 나왔다. 왜 그랬을까?

진보진영은 세계적으로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에서 자본주의 비판의 동력을 잃어 버렸고, 국내에서는 개발독재의 종식으로 타도의 대상을 잃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진보진영의 활동창구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의 인적 구성이 가맹되어 있거나 가맹하게 되는 보수교단들(예장통합, 기독교감리회, 순복음 등)의 재정적 압력으로 보수화하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기백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채 표류하고 있었다. 뭔가 대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반면, 군사독재의 최대수혜자였던 보수진영에게 군사독재종식이란 발언권의 약화를 뜻했다. 따라서 보수진영은 한기총과 더불어 개신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연합기구인 KNCC와 연합을 추구했다. 사실 말이 연합이지 내용은 적대적 M&A에 가까웠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의 실현이었다기 보다는 피차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강행한 '야합'이었고 '거짓평화'였다. 이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이후 1994년 이후 GATT 체재를 통해 가속화한 초국가적 자본세력의 세계지배가 노골화했던 현상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KNCC는 미국과 허울좋은 FTA를 체결함으로써 나라의 앞날을 팔아버린 1992년의 멕시코와 비슷한 처지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의 결과 2000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교계의 풍경이 나타났다. KNCC는 사실상 꿀먹은 벙어리가 됐고, 한기총은 더욱 부패한 이익집단으로 노골화했다. 뜻대로 껄끄러운 진보진영의 교회연합기구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보수진영은 이제 친기득권 발언과 행보를 하는데 거침없다. 예전에 반공주의 확산을 통해 개발독재정권의 비호와 지원을 받아냈다면, 이제는 친기득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개발독재잔당세력의 비호와 지원을 보장받고자 한다. 결국 그들은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요즘 보수교단들이 사이비이단문제를 다루는 양상을 보면 보수교단들이 향후 10년 정도 보여주게 될 향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사이비이단문제는 참으로 혼탁하게 처리되고 있다. 사이비이단집단들이 일반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교회를 와해시키거나, 온라인상으로 일반교회에 대한 파상공세를 펼치는 경향은 2000년대 이후 확대일로에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정이 영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와 고통을 입을 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갑갑해 온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공교회의 대처는 참으로 안이하기 짝이 없다. 전혀 무고한 교계인사를 축출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변질되는가 하면, 문제인사와 문제집단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에큐메니칼정신'을 발휘하여 이단해제조처를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현상은 본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다룬 바 있는 관상기도와 최일도 목사에 대한 이단시비이다.

관상기도와 최일도 목사 문제는 예장통합을 겨냥한 것에 다름없다. 최일도 목사가 통합측 목회자일 뿐 아니라, 통합측 장신대는 한국 개신교에서 드물게 영성신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학교이다. 예장통합에서 일정부분 수용하고 있는 칼 바르트의 신학이 이단이라고 공격하면서 예장통합도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황당한 일도 진작 비일비재했다.(*1) 즉, 합동계통의 보수진영은 예장통합 쪽을 신학적, 목회적으로 이단이라 공격할 명분을 나름대로 쌓아놓고 있다. 세결집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군소계열교단들과 합동 내지 '인수합병'함으로써 합동교단은 최대규모의 예장통합을 제치고 단일개신교단으로서는 최대 교세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형식으로든 어떤 문제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상황이라는 얘기다.(*2)

이 현상의 본질은 신학적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교단들이 신학적 근본주의를 청산했지만 정치적 근본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보수교단, 즉 예장통합 교단을 겨냥한 일종의 "집단살해"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가짜'를 색출하여 '진짜' 근본주의를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 정신적 '집단살해'의 명분이다.

그 속내용이 얼마나 몰상식하고 야만적인 것인지는 어차피 이들에게 그리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만만하게 보여서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했는데, 혹시 안 무너지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자기 신자들을 '진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상황으로 내몰아 결집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그 대상이 무너진다면 그 신자들을 흡수할 기회가 자기들에게 있으니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런 정신적 구조는 프리메이슨 음모론에 열광하는 세대주의자들, 즉 비주류 보수진영과 기본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즉, 타도의 대상을 찍어놓고 그것을 침으로써, 또는 그런 시늉을 함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이런 정신성은 그 깊은 속내에 있어서 심히 비복음적이고 반복음적이지만, 의식수준에서는 '정통신앙', '순수한 교리'를 명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황당무계한 비약과 빈약한 논리로 이루어진 세대주의 음모론와 달리 소위 오직 성경으로, 정통개혁신학이라 일컫는 신학적 근본주의의 정교한 너울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그 악성은 더욱 심하다. 하지만 이것이 '제 살 깎아먹기'라는 사실을 볼 눈이 없는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당장 자기들이 사는데 지장 없고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것을 선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용의주도한 자기정당화를 통해 진짜 속내를 무의식에 은폐한 덕에 저들은 저들이 무얼 하는지 모른다. 이 독한 악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보수교단들의 행보를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답답하고 유감스럽다. 보수진영 내부의 자성과 개혁이라는 반가운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적어도 10여년 정도, 아마도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이 현상은 극복되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은 가뜩이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그렇게 뭉개고 지리는 동안 한반도의 아픔은 가중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인류는 한국교회라는 존재를 버리고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되지 않겠는가.

보수진영의 교회들이여! 
이 사실을 기억하길 간곡히 권한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되찾기가 극히 어렵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5)

[덧붙임]
(*1) 통합측의 장신대가 바르트를 추종한다는 얘기를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김영명이 지적한 대로, 장신대는 바르트신학에서 소위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라는 요소만을 수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사회변혁이라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비롯한 다른 '급진적인' 바르트의 어젠다들은 용의주도하게 배제되어 왔다. 장신대나 통합측이 칼 바르트의 신학적 어젠다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현 정권 들어 그토록 부끄러운 침묵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면면이 통합교단이 극복하지 못한 정치적 근본주의의 핵심이다. 칼 바르트와 정치적 근본주의는 서로 상극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2) 유감스럽게도 이 글을 쓴 뒤 2011년말경 이런 움직임이 예장합동 등 보수교단들 사이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기사 참조한국장로교총연합회라는 비교적 진보적인 교계인사들이 주도한 2000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연합운동의 위력과 가능성에 눈뜬 보수교단들이 '한국교회를 위하여'라는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며 근본주의 교단 연합을 시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근본주의 세력의 가시화와 그들의 비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에 대한 파상적 사이비이단 공세 및 소위 정통성시비라는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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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19. 17:16

또 하나의 희생양만들기: MC몽의 경우

잊을만 하면 연예인의 병역기피, 마약 따위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정말 비난받을 만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게 정말 비난받을 일인가, 이게 정말 그 정도로 비난받을 일인가, 왜 하필 이때 이런 얘기가 나오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1)

MC몽의 경우도 그렇다. 별 글 쓸 생각이 없었는데 뉴스를 읽던 중 그의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상에...
너무나도 딱한 얼굴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고독하고 막막한 심경이 얼굴에 너무나도 숨김없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발치해준 의사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MC몽 본인은 고의발치이므로 유죄라니, 법원판결이 알쏭달쏭하기 그지 없다. 하긴 우리나라 판결이 알쏭달쏭한 경우가 어디 이번 뿐일까마는..

네이버지식인에 글을 올렸다든지 하는 점에서 그가 아주 흠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치아의 저작기능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 사람이 군면제를 생각해 본다는 게 그렇게나 범죄스런 문제일까?

어찌됐든 MC몽의 '범죄'를 기정사실로 단정해놓고 극언을 퍼붓는 여론은 집단따돌림의 광기가 후끈하다. 딱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속에 나오는 군중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들이 아닌가.


MC몽은 이미 연예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까지 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무책임한 극언과 조롱은 끝이 없다. 어디 또 한 사람 죽어 나가야 속이 시원들 하시겠는가. 천벌을 받았다고 통쾌해 하시겠는가. 그 피에 대해 책임들 지시겠는가?

결코 책임질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저 난리들이다. 타블로의 경우를 보라.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음에도 책임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타블로는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희생양만들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내세우는 거창한 명분과 달리 희생양만들기를 스트레스해소를 위한 심심풀이 스포츠로 행하고 있다. 이들은 정작 저항해야 할 대상에 대해선 의미있는 저항을 하지 못한다. 

집단따돌림이 자행되는 교실, 희생양만들기가 빈번히 행해지는 사회, 이것이 한국사회다.

[덧붙임]
1. 글 쓰고 얼마 안 있어서 서태지와 이지아 소식이 알려졌다. 이게 또 시점이 묘하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과 같은 일개 연예인 가십거리가 왜 하필 BBK 1심판결을 뒤집는 법원결정과 금산분리법완화(내지 폐지) 합의 등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있는 날 터졌을까?
역시나 우연이 아니었다. 이지아의 변호를 맡은 로펌 '바른'은 이명박과 관계가 깊은 법무법인이다. 이명박의 도곡동 땅 사건의 변호를 맡은 것도, BBK 때 이명박의 손을 들어준 판사가 자리를 옮긴 곳도 이곳이었다. 어떤 교감이 오갔는지, 머리 좋은 분들이 어떻게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셨는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처음부터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인물인 이명박이 동영상증거까지 주어가 없다는 궤변으로 뒤엎어버린BBK 판결 덕분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 판결에 문제가 있으셨단다. (처음부터 문제가 없다면 이상한 거였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은 대기업이 다 해먹는 나란데 금산분리법 완화 덕분에 대기업이 은행까지 소유할 수 있으시게 생겼단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물려줬다.) 어김없이 이 중차대한 이슈가 한 큐에 고이 덮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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