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6. 15:20

댓글알바의 실체.. 이 정도일줄이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지난 대통령선거는 주요방송언론만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 선관위, 국정원까지 총동원된 총체적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대해 대한민국이 정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자유국가라면 반드시 전국민적 항의와 비판이 뒤따라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를 덮어볼 요량으로 국정원에서 NLL대화록이라는 것을 "깠다." 국가정상간 협상을 자기들의 정파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이유로 까발리는 극도로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한 건데, 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는지, 제정신들인가? 그만큼 지금 초조하신가들? 


이 대화록이라는 것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국정원과 새누리당에서 꼬투리잡고 싶어하는 대목만 짜깁기한 발췌본에 지나지 않지만, 정말 웃기지도 않은 것이, 이 대화록이라는 걸 읽어 보면, 당췌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어디서 어떻게 포기했다는 건지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는 점만 똑똑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거기엔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진정한 대한민국 대통령들께서 일궈온 남북평화화해협력시대의 비전만이 빛나고 있을 따름이고, 오히려 NLL 뿐 아니라 개성과 해주까지도 포기하겠다며 '굴욕적인 협상'을 한 것은 김정일 쪽이었다.


이런데도 이런 짓을 벌인 자들은 지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못 뽑은 대통령이니 반역자니 운운하면서 또 다시 혹세무민하고 있다. 이런 같잖은 선동질에 넘어갈 사람이 있다는 것, 아니 충분히 많다는 걸 이 인간들이 알고서 이 짓을 저지르는 거다!!


정말 놀랍게도, 국정원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정원 직원들이 노무현 서거 당시에도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플을 달았다는 기사는 정말 충격이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이런 못된 짓을 한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그게 새누리당 만이 아니라, 국정원에서 저지른 짓이었다니, 이들은 국기문란의 도를 일상적으로 넘는 집단이었던 거다! (이명박정권은 이 카드를 5년 내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사참조)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런데... 대한민국은 참... 조용하다. 일본을 너무 많이 닮아가고 있다. 언론방송에서는 거짓된 소식들만이 유통되어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학생들과 청년들 사이에서는 '일베충'이 양산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이 한통속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일본 자민당식 일당독재로 가는 프레임을 완성한 것 같다. 일상적 파시즘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있는 중이다.


교회는? 칼뱅의 시민불복종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 한국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회가 운동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사회혁명의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기득권세력의 여론조작에 놀아나지는 말아야 할 게 아닌가. 한국교회가 모든 것을 "민주당과 좌빨종북세력" 탓으로 돌리는 희생양 신화에서 도대체 언제 놓여나게 될까? 


현재로선... 도무지 놓여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미 교회의 어른들은 머리가 너무 굳어 있어서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고, 교회의 학생들, 청년들은 정의를 얘기하는 걸 껄끄럽고 고깝게 듣는다. 보암직, 들음직한 것들,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에 미쳐 있으니, 시민불복종이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후... 속이 썩어들어간다. 내가 믿음이 너무 없는 탓이다. 부디 누군가는 깨어 있어서 희망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기를...


[국정원 게이트는 내란입니다] 국정원의 오랜기간에 걸친 불법적 색깔론 여론조작이 없었으면, 12.16. 경찰의 허위 수사결과발표가 없었으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을 이용한 쿠데타, 권력찬탈입니다. 박근혜, 사퇴해야 합니다 - 표창원


[덧붙임]

1. 검찰이 작성한 국정원 범죄 일람표란다. [→링크참조] 일베충이 따로 없다. 근데, 검찰이 왜 국정원을? 이건 뭘 뜻하는 것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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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4. 21:35

한국사회와 한국개신교 - 1990년대와 향후 10년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사회적 힘을 집중했다. DJ 정권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시민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룩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MB정권하에서 벌어지는 온갖 반민주주의적 참상으로부터 돌이켜 보면 현혹스러운 외양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2000년대 이전에 한국개신교회는 요즘의 요란한 모습에 비하면 비교적 '얌전하게'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새삼 되짚어 보면 1990년대는 역시 상당히 중요한 한국교회의 분수령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군사정권의 종식에 즈음하여 군종제도 등을 통해 반공주의 확산을 대가로 거의 독점적으로 누리던 독재정권의 비호와 지원이 물심양면에서 상당부분 사라졌고, 이와 동시에 교세성장률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개발독재이념의 어용종교버전이었던 반공주의적 근본주의는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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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년 시한부종말론 소동은 당시 어용종교 버전 근본주의의 통제력과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중요한 신호와도 같았다. 물론 비슷한 유의 소동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런 소동이 냉전의 묵시문학적 공포분위기에 울려퍼지는 간주곡 정도였다면, 이제 그런 식으로 '강력한' 묵시문학적 공포분위기의 임박한 종말론으로 협박하는 논조는 페레스트로이카와 문민정권 출범 이후 한결 밝아진 사회분위기와는 제대로 어울릴 수 없는 불협화음에 지나지 않았다. 언론매체는 그들의 그로테스크한 광신적 집회광경을 여과 없이 대중에 노출해 줌으로써 한국사회에 근본주의의 벌거벗은 수치를 폭로해주었다.

어용종교 버전의 주류 근본주의가 이들이 신봉하는 유의 세대주의와 신학적으로 선을 긋는데 주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그렇게 그로테스크한 광신적 집회광경은 꼭 시한부종말론을 추종하는 교회나 기도원이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광경이 광신도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일반교회들은 세대주의 종말론 설교에 대해 선을 긋고 '건전한 신앙'을 역설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92년 시한부종말론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아울러 여전히 세대주의 종말론과 음모론을 추종하는 보수진영 내의 비주류는 90년대 이후 어용종교적 근본주의 주류세력과 다르게 분화되는 길로 접어든다.

이 무렵 진보와 보수 양진영이 서로 '연합'하고자 하는 제스처가 나왔다. 왜 그랬을까?

진보진영은 세계적으로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에서 자본주의 비판의 동력을 잃어 버렸고, 국내에서는 개발독재의 종식으로 타도의 대상을 잃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진보진영의 활동창구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의 인적 구성이 가맹되어 있거나 가맹하게 되는 보수교단들(예장통합, 기독교감리회, 순복음 등)의 재정적 압력으로 보수화하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기백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채 표류하고 있었다. 뭔가 대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반면, 군사독재의 최대수혜자였던 보수진영에게 군사독재종식이란 발언권의 약화를 뜻했다. 따라서 보수진영은 한기총과 더불어 개신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연합기구인 KNCC와 연합을 추구했다. 사실 말이 연합이지 내용은 적대적 M&A에 가까웠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의 실현이었다기 보다는 피차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강행한 '야합'이었고 '거짓평화'였다. 이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이후 1994년 이후 GATT 체재를 통해 가속화한 초국가적 자본세력의 세계지배가 노골화했던 현상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KNCC는 미국과 허울좋은 FTA를 체결함으로써 나라의 앞날을 팔아버린 1992년의 멕시코와 비슷한 처지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의 결과 2000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교계의 풍경이 나타났다. KNCC는 사실상 꿀먹은 벙어리가 됐고, 한기총은 더욱 부패한 이익집단으로 노골화했다. 뜻대로 껄끄러운 진보진영의 교회연합기구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보수진영은 이제 친기득권 발언과 행보를 하는데 거침없다. 예전에 반공주의 확산을 통해 개발독재정권의 비호와 지원을 받아냈다면, 이제는 친기득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개발독재잔당세력의 비호와 지원을 보장받고자 한다. 결국 그들은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요즘 보수교단들이 사이비이단문제를 다루는 양상을 보면 보수교단들이 향후 10년 정도 보여주게 될 향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사이비이단문제는 참으로 혼탁하게 처리되고 있다. 사이비이단집단들이 일반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교회를 와해시키거나, 온라인상으로 일반교회에 대한 파상공세를 펼치는 경향은 2000년대 이후 확대일로에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정이 영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와 고통을 입을 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갑갑해 온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공교회의 대처는 참으로 안이하기 짝이 없다. 전혀 무고한 교계인사를 축출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변질되는가 하면, 문제인사와 문제집단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에큐메니칼정신'을 발휘하여 이단해제조처를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현상은 본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다룬 바 있는 관상기도와 최일도 목사에 대한 이단시비이다.

관상기도와 최일도 목사 문제는 예장통합을 겨냥한 것에 다름없다. 최일도 목사가 통합측 목회자일 뿐 아니라, 통합측 장신대는 한국 개신교에서 드물게 영성신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학교이다. 예장통합에서 일정부분 수용하고 있는 칼 바르트의 신학이 이단이라고 공격하면서 예장통합도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황당한 일도 진작 비일비재했다.(*1) 즉, 합동계통의 보수진영은 예장통합 쪽을 신학적, 목회적으로 이단이라 공격할 명분을 나름대로 쌓아놓고 있다. 세결집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군소계열교단들과 합동 내지 '인수합병'함으로써 합동교단은 최대규모의 예장통합을 제치고 단일개신교단으로서는 최대 교세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형식으로든 어떤 문제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상황이라는 얘기다.(*2)

이 현상의 본질은 신학적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교단들이 신학적 근본주의를 청산했지만 정치적 근본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보수교단, 즉 예장통합 교단을 겨냥한 일종의 "집단살해"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가짜'를 색출하여 '진짜' 근본주의를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 정신적 '집단살해'의 명분이다.

그 속내용이 얼마나 몰상식하고 야만적인 것인지는 어차피 이들에게 그리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만만하게 보여서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했는데, 혹시 안 무너지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자기 신자들을 '진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상황으로 내몰아 결집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그 대상이 무너진다면 그 신자들을 흡수할 기회가 자기들에게 있으니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런 정신적 구조는 프리메이슨 음모론에 열광하는 세대주의자들, 즉 비주류 보수진영과 기본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즉, 타도의 대상을 찍어놓고 그것을 침으로써, 또는 그런 시늉을 함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이런 정신성은 그 깊은 속내에 있어서 심히 비복음적이고 반복음적이지만, 의식수준에서는 '정통신앙', '순수한 교리'를 명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황당무계한 비약과 빈약한 논리로 이루어진 세대주의 음모론와 달리 소위 오직 성경으로, 정통개혁신학이라 일컫는 신학적 근본주의의 정교한 너울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그 악성은 더욱 심하다. 하지만 이것이 '제 살 깎아먹기'라는 사실을 볼 눈이 없는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당장 자기들이 사는데 지장 없고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것을 선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용의주도한 자기정당화를 통해 진짜 속내를 무의식에 은폐한 덕에 저들은 저들이 무얼 하는지 모른다. 이 독한 악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보수교단들의 행보를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답답하고 유감스럽다. 보수진영 내부의 자성과 개혁이라는 반가운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적어도 10여년 정도, 아마도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이 현상은 극복되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은 가뜩이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그렇게 뭉개고 지리는 동안 한반도의 아픔은 가중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인류는 한국교회라는 존재를 버리고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되지 않겠는가.

보수진영의 교회들이여! 
이 사실을 기억하길 간곡히 권한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되찾기가 극히 어렵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5)

[덧붙임]
(*1) 통합측의 장신대가 바르트를 추종한다는 얘기를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김영명이 지적한 대로, 장신대는 바르트신학에서 소위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라는 요소만을 수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사회변혁이라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비롯한 다른 '급진적인' 바르트의 어젠다들은 용의주도하게 배제되어 왔다. 장신대나 통합측이 칼 바르트의 신학적 어젠다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현 정권 들어 그토록 부끄러운 침묵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면면이 통합교단이 극복하지 못한 정치적 근본주의의 핵심이다. 칼 바르트와 정치적 근본주의는 서로 상극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2) 유감스럽게도 이 글을 쓴 뒤 2011년말경 이런 움직임이 예장합동 등 보수교단들 사이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기사 참조한국장로교총연합회라는 비교적 진보적인 교계인사들이 주도한 2000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연합운동의 위력과 가능성에 눈뜬 보수교단들이 '한국교회를 위하여'라는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며 근본주의 교단 연합을 시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근본주의 세력의 가시화와 그들의 비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에 대한 파상적 사이비이단 공세 및 소위 정통성시비라는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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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1. 15:01

권위주의 시대의 도래?

극단적인 경우 대한민국에 어쩌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전체주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상황을 보면 여건이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있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다. 

1. 남북갈등이 심화하여 여론이 한 방향으로 경직되기 쉽다. 
적절히 증오와 분노를 부추겨주면 그 다음은 스스로 동력을 얻어 돌아가게 될 것이다.

2. 현 대통령과 정권이 레임덕을 타개할 계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현 정권은 전 정권에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햇볕정책을 3년간 철저하게 중단하고 부정하면서 대북강경고립정책을 구사해 온 현 정권이 막상 일이 터지자 햇볕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는 데서 현 정권의 기본마음가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북갈등심화 덕분에 현 정권은 자신과 견해를 같이 하지 않는 비판세력을 북한과 동일시하여 통제하는 전략을 보다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애꿎은 희생양을 만들어 악마화함으로써 자기칭의를 도모하기 위해 온라인글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권비판세력에 대한 사찰과 검열이 의로운 분노의 이름으로 일상화될 수 있다. 민간인사찰과 대포폰의 존재 따위는 그 나쁜 조짐으로 보인다.

3. 언론방송장악이 사실상 거의 이루어진 상태다. 
언론방송권력을 견제할 수단이 현재로선 실질적으로 없어 보인다. 정권과의 이해관계호응에 따라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도구역을 자임한다면 기득권층으로선 여론을 순식간에 조종통제할 수 있게 된다. 정권과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서 내보내면서, 이에 동조하지 않는 시민이나 집단은 색깔론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제압할 것이다. 
이미 이것은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 해왔고, 당대표가 공식적으로 '사이버전사'를 양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알바들이 내뱉는 몰상식한 극언이 정권의 정책이나 행동에 실제로 반영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정도가 되면 실질적으로 전체주의와 별 다를 것 없는 권위주의 사회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4. 야당과 시민사회가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해졌다. 
김대중, 노무현 이후 실질적으로 민주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못했다. 야당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서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민의를 대변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5. 군검경이 현 정권과 긴밀히 호응하고 있다. 
군은 노무현 시절 제2 롯데월드 설립허가를 안보를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하다가 현 정권 들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검찰은 자신들에게 자율권을 준 노무현 대통령을 주변사람들을 꼬투리잡아 죽였지만, 동영상 증거까지 남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까지 나서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했다. 
경찰은 현 수장부터가 철저히 군사독재시대의 악습이 발상과 처신에 몸에 배어 출세를 거듭했다.
군검경은 현 정권의 이해관계에 적극부응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몇 해전 저명한 찬송시인 송명희님이 '표'라는 소설에서 조만간 대한민국에 베리칩을 표로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대환란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666표를 두려워하고, 적그리스도가 교회와 세상을 커다란 고통에 빠뜨릴 대환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휴거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근본주의 내지 세대주의 종말론 프레임에서 나온 얘기다. 
조금만 찾아 보면 이와 비슷한 얘기들이 꽤 많이 나돌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 오워의 전쟁예언을 얘기하는 이들도 이 프레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자는 그들의 최선의 의도는 존중하지만, 세대주의 종말론은 애시당초 성경적으로 합당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송명희 시인이 그리는 것과 같은 시나리오에 딱 한 가지 공감하는 부분은 이대로 가면 전체주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아직 그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일말의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한 때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란다.
그러나 만일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이 온다면 체재의 속성상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정당하고 의롭다고 굳게 믿으면서 모든 악행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이 대목에 대해 얼마나 깨어 있는가? 이 점에서 다시금 마음이 갑갑해진다. 
바르멘신학선언을 작성해 독일교회의 대히틀러투쟁을 고취했던 바르트나 히틀러암살계획에 가담했던 본회퍼를 신학교나 설교에서는 곧잘 들먹이지만, 막상 교회현장에서는 목회자나 대중 모두 워낙 몰역사적인 개인신앙에 절어 있어서 역사참여를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공이데올로기에 열광하면서 기득권의 행태에 철저히 호응하고 있으니 이 모순과 부조리를 어찌하면 좋을꼬... 하나님께서 도움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덧붙임]
- 미국의 유니테리언 목사이자 예수 세미나의 펠로우인 데이빗슨 뢰어는 미국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정치적 근본주의에 호응하여 새로운 파시즘을 초래할 것을 내다보며 우려와 비판을 표명한 바 있다. 뢰어의 유니테리언주의나 예수세미나식 역사적 예수 연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정치신학적 문제의식은 동감이다. 한국 상황은 미국과 딱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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